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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1. 2023

나도 글만 쓰는 바보가 되고 싶다

027: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요즘 세상에 누가 책을 봐?"     

얼마 전에 책을 펴 놓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뒤를 지나가며 호기 있게 내뱉은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책 읽느라 나름 정신이 없었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말이 전혀 틀렸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소설책보다는 웹소설이, 일반적인 만화책보다는 웹툰이 대세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이러고 있는 저 역시 노트가 아니라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올바른 사람이 되려면 책을 가까이해서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느껴 보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하기에 책을 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의 폭이 크고 넓은 지금의 이 세상에, 언제 고리타분하게 활자나 들여다보고 있겠냐는 비아냥이 때론 전혀 근거 없이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다 유능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움직이는 컴퓨터의 기능을 익혀야 하고, 각기 일선에서 자신에게 맞게 또 활용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SNS를 통하여 실시간으로 먼 곳에 있는 사람과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 바쁜 시간에도 나름 인간의 냄새를 맡기에 여념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에 발맞추지는 못할 망정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다는 게 조금은 답답함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나면 저는 책을 펴 듭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작가님들 역시 기꺼이 그런 생활의 편의나 문명의 이기 대신 깨알 같이 적힌 글씨들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파고들 것입니다. 이쯤 되면 '책만 보는 바보'의 경지엔 이르진 못해도 '책을 보는 바보' 정도는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 『책만 보는 바보』는 저를 포함한 여러 작가님들 같이, 그 좋은 것들과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기꺼이 '책을 보는 바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먼저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가슴 전체가 먹먹해져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난해하거나 말도 안 되는 무언가를 읽어서 답답한 그런 가슴 먹먹함이 아니라, 가슴통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모종의 감동이었다고 하는 게 옳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이덕무 선생은 조선후기 실학자를 대표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위로는 연암 박지원 선생과 담헌 홍대용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무사 백동수(매부),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같은 쟁쟁한 이들과 한평생 벗 삼으며 학문과 사상들을 교류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리 보면 이덕무 선생만 '책만 보는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있듯 선생을 둘러싼 모든 인맥들이 다 그런 유형의 바보들인 셈입니다.     

그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보기에 지극히 아름답고 정겨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그저 부럽기만 했습니다. 왜 우리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글쓰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다 보니 아주 가까운 지인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입니다.

    

각자의 편의에 따라 편 가르기가 이루어지고, 싫은 것은 주저 없이 싫다고 하고 좋은 것은 또 그대로 너무 좋아서 죽는 철저히 계산적인 인간관계가 대세를 이루는 요즘의 사람들에겐, 이 책 속에서 비치는 인간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교류가 적지 않은 본보기가 될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금방 내치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생기면 생년월일에, 이도 안 되면 학번까지 들먹이며 서열 매기기에 익숙해져 버린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친구라고는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서도 서로를 허물없는 벗으로 지칭하며 한평생 사귐을 지속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참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그들의 생년을 따져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홍대용(1731), 박지원(1737), 이덕무(1741), 백동수(1743), 유득공(1748), 이덕무(1741), 박제가(1750), 이서구(1754)     


이들 중 담헌 선생과 연암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적게는 2살에서 많게는 13살까지 나이 차이가 납니다. 시쳇말로 '내 밑으로 모여!' 하는 말을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이라는 굴레도 벗어던지고 어디까지나 친구가 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첩의 자식이라는 동질감도 한몫했으려니와 그래서 학문적 소양이 깊어도 조금도 쓰임새가 없는 자신의 처지 면에서나, 아무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독특한 그들만의 학문적인 관심에 대해서, 그들은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고 평생의 벗이 되었습니다.      

관념의 울타리에 갇혀 백성들의 궁핍한 삶은 전혀 돌볼 줄 모르는 지배계층의 아성 속에서, 자신들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안이 제대로 관철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으며 온고이지신, 하는 심정으로 한평생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던 그들은 진정 '책만 보는 바보'였습니다. 물론 그때의 심정들이, 그 궁핍한 삶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체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던 그들이었기에, 때론 자기 환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비참한 것은 쓰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 책만 파고들면 무엇 하나? 내 말과 글로는 세상을 조금도 바꾸어 놓지 못하는 것을, 몸을 움직여할 줄 아는 일이 무엇이던가? ☞ 본 책, 185쪽     


언젠가는 쓰임새가 있을 날이 올 거라 믿었겠지만, 웬만해선 그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았던 그 당시에 한평생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 모습들이 더욱 크게만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 속에 소개된 두 가지 일화만 소개하고 글을 맺을까 합니다.     


자신의 배고픔은 물론 가족의 굶주림을 보다 못한 이덕무 선생이 어느 날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책이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집을 찾아들었던 벗들에게 그렇게도 자랑해마지 않았던 『맹자』한 질을 저잣거리에 돈 이백 전에 내다 팔아 양식을 마련해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그날에, 유득공 선생의 집에서 자신의 그런 신세를 농담 삼아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네, 오늘 내가 누구에게 밥을 얻어먹은 줄 아는가? ……(중략)…… 글쎄, 맹자께서 양식을 잔뜩 갖다 주시더군. 그동안 내가 당신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 주어 고마웠던 모양일세."
유득공은 얼른 서글픈 표정을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 나도 좌씨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먹어야겠습니다. 그래도 허물없을 만큼 그의 글을 꽤 읽었지요."
그러고는 책장에서 『좌씨춘추』를 뽑아, 아이를 시켜 술을 사 오게 하였다. ☞ 본 책, 32~33쪽     


벗들만 간간이 드나들었던 호젓한 나의 집에, 별안간 굵은 나무와 연장을 짊어진 장정들이 들이닥쳤다. ……(중략)……
"매부, 이 사람들에게 마당을 좀 빌려 주시지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백동수가 먼저 말했다.
……(중략)……
유득공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여기, 방 한 칸을 만들려고 합니다. 편안하게 책도 읽고, 저희도 자주 찾아와 함께 지내고……." ☞ 본 책, 47쪽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또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정을 돈독히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처럼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물론 어쩌면 그건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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