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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1. 2023

커피 전문 매장에서 글 쓰기

60시간 직무연수 필기고사를 마치고 집 앞 파스쿠찌에 왔습니다. 오늘도 와 보니 기분을 흐뭇하게 해 주는 점원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파스쿠찌는 전체가 2층으로 이루어진 매장인데, 화장실이 2층에 있다 보니 볼 일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굳이 2층에 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여기 오는 사람들은 죄다 1층에는 있지 않으려 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음료를 받으면 열에 아홉은 음료가 담긴 쟁반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저로선 사실 금상첨화입니다. 소음을 일으킬 만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남아 있지 않으니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이만큼 좋은 환경도 없습니다.


오늘도 1층 매장엔 점원 한 명과 저만 있습니다. 제가 올 때마다 마시는 따뜻한 카페모카 한 잔을 오른쪽 옆에 두고 글 몇 줄 쓰고, 빨대로 두어 모금 빨아들입니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적었든 그런 저의 성향을 이미 알고 있는 점원은 음료를 건넬 때마다 두어 장의 냅킨과 빨대를 꼭 챙겨주곤 합니다.


적당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습니다. 팝송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는 차라리 그것이 다행입니다. 가사를 알고 있는 노래가 들려온다면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느 정도는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괜스레 분위기를 잡는답시고 노랫말을 흥얼거리다 막 생각이 난 표현들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올 때마다 팝송이 들려오는 이 파스쿠찌 매장이 싫지 않습니다.


적어도 오늘은 눈앞에 보이는 것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넓은 1층에 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이 있는데, 때마침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한창 메뉴를 주문 중인데, 나이는 저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입니다. 한 분은 안경을 썼고, 나머지 한 분은 안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안경을 쓰지 않은 분이 매장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각종 커피류와 텀블러 및 컵들이 전시된 선반이 발길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안경 쓴 여성 분이 계산을 마치고 같이 구경에 나섭니다. 조금 더 제 쪽으로 가까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안경을 쓰지 않은 분은 2층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안경을 쓴 사람은 그냥 있기 겸연쩍었던지 연신 선반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보통 성격을 가진 분은 아닌 듯 보입니다. 당연히 결혼했을 거라고 본다면 아마도 그분은 집에서 남편에게 꽤 잔소리를 많이 할 스타일로 보입니다. 내내 뒷짐을 지고 걸어 다니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갑자기 집에 있는 제 집사람이 떠오릅니다. 하기야 아내라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 같습니다. 남편들의 행동을 보면 도저히 잔소리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무슨 메뉴를 시켰는지는 제가 앉은자리에서 들리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커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가 싶더니 이내 메뉴가 완성된 모양입니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사람은 둘이었는데, 안경을 쓰신 여성 분이 들고 가는 쟁반엔 떡하니 네 개의 음료가 보입니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두 사람이 더 오는 모양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두 사람을 기다릴까 하다가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커피 전문 매장은 글쓰기에 참 편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만 흠이 있다면, 커피 한 잔의 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겠지만,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두세 시간 동안 마음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다면, 뭐 그것도 가히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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