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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2. 2023

힘들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

029: 윤기현의 『서울로 간 허수아비』를 읽고…… 

말이 필요하지 않았던 우리네의 옛 삶의 모습들. 먹을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아 그렇게 곱고 선했던 기질마저도 제대로 펼 수 없었던 불쌍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어쩌면 우리네 부모님들과 조부모님들의 지나온 자취가 여기 이 책, 『서울로 간 허수아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표제작인, 「서울로 간 허수아비」와 저 나름 가장 주목할 만한 단편인 「복 항아리와 화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총 12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동화집은, 눈물겹도록 힘겨운 우리네 삶의 모습들이 차분히 그려지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이는 듯하단 느낌마저 들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소박한 꿈들이 엿보이고 살아 숨 쉬는 듯한 자연의 모습들도 비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암울했던 과거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이들 중에서도 「복 항아리와 화 항아리」는 이주홍의「청어뼉다귀」를 보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쓰라려 오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복 항아리와 화 항아리」는 기본적인 이야기의 틀을 「흥부와 놀부」혹은 늘봄 전영택 선생의 「화수분」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착하게 산 사람은 그 선함에 따라 끝내는 보상을 받고, 악하게 살았던 사람은 결국은 자기 욕심에 자멸을 하고 만다는 누구나 쉽게 예상하고 또 바랄 수 있는 뻔한 결말……, 볼품없는 독에 불과하지만 어떤 물건이든 그 속에 담아 두면 아무리 꺼내도 계속 쏟아져 나온다는 화수분…….     

그렇지만, 차라리 「흥부와 놀부」식의 결말을 따르지 않고 착하게 살았던 돌쇠를 마지막에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의 제물로 삼게 한 결말은 아무래도, 해피엔딩을 내심 바랐던 독자의 입장에선 적지 않은 아쉬움을 주기도 한 이야기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제목도, 『서울로 간 허수아비』가 아니라 『복 항아리와 화 항아리』로 바꾸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아무튼 잔잔하게 읽을 만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 창작 동화들처럼 정제되고 현란한 수사법들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다소 읽기에 투박하거나 밋밋할 여지도 없진 않았지만,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어딘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처럼 들릴 법한 것들이기에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작품이라고 여깁니다.      


쥐들은 강영감집뿐 아니라 동네에도 퍼져 나갔습니다. 온 동네가 쥐로 들끓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화가 나서 강영감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저놈의 영감, 이마에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이력이 붙더니 하늘에서 내려 준 남의 복까지 훔쳐서 화를 불러들였구만. 그러면 저 혼자나 당하지, 죄 없는 동네 사람들까지 다 죽게 할 게 뭐람.” ☞ 본 책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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