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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5. 2023

일기의 저력

백 서른한 번째 글: 지금, 어디까지 오셨나요?

글을 잘 쓴다 싶은 사람에겐 남다른 비책이랄까,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내려오듯 뚝딱, 하고 장착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쉽게 쓰는 것 같아도 본인에게는 피나는 노력이 따른 결과일 터입니다. 울고 웃으며 몇 번이고 넘어져 온, 스스로를 다독이며 달랜 결과일 것입니다. 반면에 일괄된 하나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로 일기 쓰기 습관입니다.


일기란 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에 비로소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는 글의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그런 글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아니 일기를 검사하지 않던 고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손에서 놓았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 그땐 일기 쓰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일기를 지속적으로 써 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일기의 진가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일기를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들의 글은 확실히 다른 데가 있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글을 잘 쓰기 위해 일기를 써야 한다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같이 들립니다. 말이 자연스러우려면 글을 잘 쓰기 위해 일기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기를 쓰다 보니 글을 잘 쓰게 된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되는 것이겠습니다.


난데없이 일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 반 학부모님 중에 와 개인적인 톡을 주고받는 분이 한 분 있습니다. 아, 물론 오해는 금물입니다. 지금 어떤 목적을 갖고 한창 그분을 꼬드기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전 어머님이 꼭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학부모와는 어떤 식으로든 엮이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는 요즘의 선생님들이 보면 게 정신 나간 짓을 한다며 손가락질할 만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긴 합니다.


신학년 준비 기간인 2월 하순 경 곧 우리 학부모님들이 되실 분들에게 인사 및 카톡을 보내 드렸을 때였습니다. 으레 주고받는 덕담과 인사가 이어지던 가운데 지금 가 말한 그 어머님이 답장을 보내오셨습니다. 별다른 게 없는 내용이었지만, 뭔가 남다른 촉이 왔습니다. 뭐지, 이 느낌은, 하던 생각이 3월 중순을 넘어가기도 전에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24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길이도 길이지만, 뭐랄까 그분의 글엔 학부모로서의 일방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요구 사항이 없었습니다.

보통 말 잘하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소박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 그분과 톡을 주고받을 때마다 늘 즐거웠습니다. 어쩌면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 글이 날아올 때면 세 번씩은 읽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왜 가 그분의 문자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그분은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글을 쓰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특유의 오지랖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 그런가 보다, 하면 될 것을, 기어이 그분에게  본심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전 어머님이 글을 쓰시면 좋겠어요."

아마 그분도 꽤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아이의 담임에게서 그런 제안을 받았으니, 게다가 수시로 문자와 글로 그런 의도를 은근히 비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새벽에 자고 있는 사이 그분이 문자를 보내 놓으셨습니다. 읽다가 도 모르게 무릎을 쳤습니다. 모든 비밀이 이제야 풀리고 만 것입니다. 그분의 톡에서 받은 그 묘한 느낌, 대면 상담했을 때의 뭔가 조금은 남다른 이끌림, 그리고 같은 톡을 몇 번이나 읽게 만드는 그 이유.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니 그 끝에 일기 쓰기가 있었습니다. 오늘 그분의 톡을 보고 두 가지 확신을 했습니다.

하나는 도 일기를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역시 그분은 글을 써야 하다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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