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저력
백 서른한 번째 글: 지금, 어디까지 오셨나요?
글을 잘 쓴다 싶은 사람에겐 남다른 비책이랄까,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내려오듯 뚝딱, 하고 장착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쉽게 쓰는 것 같아도 본인에게는 피나는 노력이 따른 결과일 터입니다. 울고 웃으며 몇 번이고 넘어져 온, 스스로를 다독이며 달랜 결과일 것입니다. 반면에 일괄된 하나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로 일기 쓰기 습관입니다.
일기란 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에 비로소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는 글의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그런 글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아니 일기를 검사하지 않던 고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손에서 놓았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 그땐 일기 쓰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일기를 지속적으로 써 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일기의 진가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일기를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들의 글은 확실히 다른 데가 있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글을 잘 쓰기 위해 일기를 써야 한다는 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같이 들립니다. 말이 자연스러우려면 글을 잘 쓰기 위해 일기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기를 쓰다 보니 글을 잘 쓰게 된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되는 것이겠습니다.
난데없이 일기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 반 학부모님 중에 저와 개인적인 톡을 주고받는 분이 한 분 있습니다. 아, 물론 오해는 금물입니다. 지금 어떤 목적을 갖고 한창 그분을 꼬드기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전 어머님이 꼭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학부모와는 어떤 식으로든 엮이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는 요즘의 선생님들이 보면 제게 정신 나간 짓을 한다며 손가락질할 만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긴 합니다.
신학년 준비 기간인 2월 하순 경 곧 우리 학부모님들이 되실 분들에게 인사 및 카톡을 보내 드렸을 때였습니다. 으레 주고받는 덕담과 인사가 이어지던 가운데 지금 제가 말한 그 어머님이 답장을 보내오셨습니다. 별다른 게 없는 내용이었지만, 뭔가 남다른 촉이 왔습니다. 뭐지, 이 느낌은, 하던 생각이 3월 중순을 넘어가기도 전에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24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길이도 길이지만, 뭐랄까 그분의 글엔 학부모로서의 일방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요구 사항이 없었습니다.
보통 말 잘하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소박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야기, 그분과 톡을 주고받을 때마다 늘 즐거웠습니다. 어쩌면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 글이 날아올 때면 세 번씩은 읽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왜 제가 그분의 문자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그분은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글을 쓰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 특유의 오지랖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아, 그런가 보다, 하면 될 것을, 기어이 그분에게 제 본심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전 어머님이 글을 쓰시면 좋겠어요."
아마 그분도 꽤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아이의 담임에게서 그런 제안을 받았으니, 게다가 수시로 문자와 글로 그런 의도를 은근히 비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새벽에 자고 있는 사이 그분이 문자를 보내 놓으셨습니다. 읽다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습니다. 모든 비밀이 이제야 풀리고 만 것입니다. 그분의 톡에서 받은 그 묘한 느낌, 대면 상담했을 때의 뭔가 조금은 남다른 이끌림, 그리고 같은 톡을 몇 번이나 읽게 만드는 그 이유.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니 그 끝에 일기 쓰기가 있었습니다. 오늘 그분의 톡을 보고 두 가지 확신을 했습니다.
하나는 저도 일기를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역시 그분은 글을 써야 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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