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치고써 Oct 25. 2023

늘 다닌 곳에

백 서른세 번째 글: 매의 눈으로 살펴보라.

러시아의 형식주의 문학비평가인 쉬클로프스키는 문학적 표현에 있어서 '낯설게 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는 낯선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낯익은 것을 마치 낯선 것처럼, 혹은 처음 본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지금 당신이 보고 있거나 읽고 있는 것은 (당신이) 처음 보는 것이 맞지요?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우리가 그 익숙한 것을 돈과 시간을 들여 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독자를 속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랑이야기를 읽어도 우리가 새로움을 느끼는 것도, 그 흔해 빠진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를 보며 빠져 드는 것도 이 '낯설게 하기'의 효과 덕분인 셈입니다.


만약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이 조금도 낯선 느낌이 없다면 전혀 읽을 가치가 없는 글, 즉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과업생깁니다.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쓰든 그가 쓰는 글은 이전의 글과 비교했을 때 색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익숙한 것을 낯설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낯설게 표현하기의 기본은 치밀한 관찰에 있다고 합니다.


늘 다니던 곳에 아주 희미한 변화가 일어날 때가 간혹 생깁니다. 꽤 많은 점포들이 들어선 상가에서 한 가게가 업종을 바꿔 개업합니다. 피자 가게가 치킨집으로 둔갑하고, 슈퍼마켓이 편의점으로 바뀝니다. 이런 경우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매장 안에 어떤 메뉴가 있고 각 메뉴의 가격까지는 모르더라도, 점원은 몇 명이 있는지  또 그들의 용모는 어떤지에 대해, 그리고 평소에 손님은 얼마나 오고 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소한 것을 포착할 때 우린 그에게 '매의 눈'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창공에서 유유히 비행하는 한 마리의 매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심한 듯 날다가 무려 마하 0.3의 속력으로 수직 급강하할 때가 있습니다. 그 정도면 거의 1초에 100여 미터를 날아가는 속력입니다. 지상에서 꿈틀대는 작은 먹이를 발견했을 때입니다. 그 높은 곳에서 매는 어떻게 그 작은 먹이를 발견했을까요? 그래서 우린 관찰력이 좋은 사람을 두고 매의 눈을 가졌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 치밀한 관찰력은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표현하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시인이 일상어를 비틀어 관념을 생산해 내듯, 소설가 역시 몇 천 번 혹은 몇 만 번이나 우려먹은 그 뻔한 소재를 비틀어 (너무도 익숙하지만) 마치 처음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쓴 글이 혹은 우리가 쓴 글이 식상하다면 이 낯설게 하기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원인은 관찰의 부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한 잔의 여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