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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25. 2023

오백번 주저

0500

500번째 글을 올립니다.

'드디어'보다는 '기어이'가 어울립니다.

오백 번의 성공이 아닌 오백 번 주저의 결과입니다.

주저躊躇


늘 머뭇거리고 늘 망설이다가 마침내 쓰기로 합니다.

나의 글쓰기는 매번 실패의 흔적들입니다

어제보다 나은 실패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어제와는 다른 실패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두 글자의 본질은 모두 부수인 발 족 자가 말해줍니다.

주저함은 손놀림보다는 발걸음의 머뭇거림입니다.

펜을 쥔 손보다 저 멀리의 발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상입니다.

글은 손으로 쓰지만 발이 더 바빴던 지난날이었습니다.

발은 육체에만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내 감정에도 수많은 발들이 달려 있었기에 그대에게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내 감성에도 수많은 발들이 달려 있었기에 활자너머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500편의 손바닥만 한 글들은 이런 주저하는 마음과 머리의 발자국들입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오늘도 주저하고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이토록 글쓰기는 쉽지 않은 인간의 행동입니다.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 가슴을 헤집어야 하고 활자를 골라야 하고 문장을 지어내야 합니다.

글쓰기는 관성이 없습니다

오늘 다시 오르는 산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글을 쓰며 오르는 일입니다.

오늘 잘 올랐다고 내일이 쉬워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글을 쓰며 오른 내 주위의 풍경이 아름답고 글을 쓰며 스쳐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는 겁니다.

그것이 귀하고 아쉬워 글을 다시 쓸 뿐입니다.

기교는 멀리 내달리지 못하게 하고 유사반복이나 자아도취로 쉬 지치게 합니다.


다시 연필을 깎으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아무 일 없는 나날은 아니었지만 500편을 쓸 때까지 글하나 올리지 못할 정도로 하루가 치명적인 날이 없었음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글을 쓰기 위해 주저하는 날들로 가득할 것이 뻔합니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그리움이 원천입니다.

그리움이 없는 삶으로 살아가는 순간 글쓰기는 증발할 겁니다.

그리움은 샘과 같아서 이렇게라도 글로 매일 퍼내지 않으면 금세 말라버릴지도 모릅니다.


이 고백은 하렵니다.

구독자님의 눈길 없이 글쓰기가 이제껏 온전하였을까 반문합니다.

500편의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었음에는 구독자님!


그대가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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