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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5. 2023

한 번은 읽어 볼 만한 책

035: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를 읽고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 책은 조금은 눈앞에 드리워진 안개가 걷히는 느낌을 갖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철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극도의 무지함을 갖고 있는 저인 데다, 평소에 치기 어린 모습으로 이 정도 책쯤은 읽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 도전해 본 몇몇 책들을 덮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던 경험만을 했었는데, 이 책은 제게 그런 걱정을 불식시켜 준 책인 듯 보입니다.


철학 책을 읽을 때면 늘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대목들이 많았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나중엔 실컷 읽어도 도대체 뭘 읽었는지 모르는 상황에까지 치닫곤 했었습니다. 조심스레 짐작해 보건대, 그간의 저의 철학적인 소양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긴 하겠지만, 가장 큰 난관은 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는 고대 희랍의 7 현인으로 일컫어지고 밀레토스 학파이기도 한 탈레스에서부터 현대 해석학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다머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사를 다룬 책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B.C. 600여 년에서 거의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철학자들을 다룬 건 아닙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사상의 형성과 사고의 전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38명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조명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들 38명의 사상과 그 개인적인 삶을 여기에서 하나하나 짚어본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책을 안내하는 입장에서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 보여 과감히 생략하기로 합니다. 다만 몇 가지는 꼭 짚어 보았으면 싶은 게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연대순으로 책의 내용이 구성되어 있으니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다는 점을 꼭 얘기하고 싶습니다. 연대순으로 되어 있다 보니, 하나의 사상에서 파생되어 나온 여러 가지 생각들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하나의 사상이 영향을 준 후대의 것들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고, 서로 다른 사상을 나름 비교 분석해 보는 데 적지 않은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던 책입니다.


다음으로 책 속에 소개된 참고 문헌들, 즉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 연구하고 사색해 온 결과물들인 저작들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펴낸 책으로 따지면야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겠지만, 특정한 철학자 한 사람을 거론했을 때 반드시 다루어야 할 저작들에 대해서 소개해 준 부분은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관심이 적더라도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차동엽 신부의『잊혀진 질문』을 보면, 저자를 가르쳤었던 교수 얘기가 나옵니다. 그분이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책 한 권 읽고 모든 것을 아는 체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들지만,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맨 처음 접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철학은 언제나 제게 생소하고도 어렵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가 고등학교 교사이다 보니 제자들에게 들려주듯 시종일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분명 이 점은 가뜩이나 철학이라고 하면 주눅부터 들고 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두려움과 편견을 사라지게 해 줄 수 있는 책이 아니겠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긴 하지만 1993년에 사놓고 몇 번이나 도전했다가 2/3 정도만 읽고 지금까지 책꽂이에서 먼지만 먹고 있던 책이 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수였던 스털링 P. 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 700여 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자마자 이번에는 꼭 도전해 보리라 생각하며 다시금 집어 들겠다고 마음을 먹어봅니다.

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관심은 있는데 그 방대함에 그리고 그 난해함에 지레 겁부터 먹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한 번 읽고 크게 달라지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겠으나, 적어도 철학의 흐름이 희미하게나마 머릿속에 새겨지게 해 줄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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