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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6. 2023

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036: 이인의 『자기계몽』을 읽고…… 

전 개인적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서적들 중에서 '자기 계발'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책들을 가장 혐오시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건 제가 더 이상 계발할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성공한 일을 그대로 저에게 가져온다고 해서 그 효과가 보장된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런 종류의 책들을 펴내는 사람들도 나름의 고민과 문젯거리를 가지고 심도 있게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또 그 나름의 논리에 맞춰 독자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기도 해, 사실 그 속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이상하게도 좀처럼 손이 잘 가지 않곤 합니다.


아집이 세고 편견으로 사로잡힌 그런 성격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만, 자기 계발의 필요성을 느껴 접하게 되는 그런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단점들이 너무도 치명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 단점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면, 깊이 있는 철학적인 고민이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단편적인 즉효약을 처방하려 애쓴다는 것, 간혹 평범한 독자들과는 출발점이 너무도 다른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사례 수기는 읽을수록 고민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오히려 좌절감만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실제의 사실보다도 우리에게 전달되는 내용들이 너무도 미화되어 있다는 것 등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 『자기계몽』은 여타의 자기계발 서적들과는 사뭇 달랐다고 생각됩니다. 분야별로 정리한다면 이 책도 분명히 자기 계발 도서에 해당될 것이라 생각되지만, 인문학 서적 못지않은 깊이를 가진 책이 아닌가 싶은 확신이 들 정도로 그 깊이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논리를 이끌어가는 전반적인 그 수준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말들을 저자가 하고 있었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을 적절히 들고 있어 책 내용과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주억거렸던 기억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맞아, 바로 그거였어!’라는 식의 내적인 동의가 저절로 이루어졌고, 논리적으로도 그다지 어려운 부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읽었으며, 또 그만큼 많이 무릎을 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그런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에도 단점이 없진 않습니다. 일단은 이에 해당하는 사항들을 두어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우선은 대부분의 논리적인 전개 과정이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했다거나, 생활의 필요에 의해 즉시 적용을 해서 짧은 시간 안에 효과를 거둘 특별한 비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분명 크게 실망하고 책을 덮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단 얘기겠습니다. 일단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저자의 구구절절한 주장들을 짚어가며 따라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둘째로, 자기 계몽이라고 했으니 외부적인 자각이라든지 인식의 대전환 등을 통해 개개인의 내부적인 심경(의지, 생각 따위)의 변화를 가져와야 할 텐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뭔가 좀 허술하단 생각을 떨쳐 버리기 힘듭니다. 즉 실천적인 면보다는 아무래도 이론적인 면에 치우치고 있단 의미이고, 수많은 사회 및 문화적 현상들을 열거하고, 이에 대해 현대의 지식인들이 가져야 할 인식이나 마음가짐 등을 논하는 대부분의 책 내용이 때로는 무분별한 주장의 남발로도 여겨질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자기 계몽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라든지 행동 지침 같은 것들이 제시되어 있었다면 그래도 자기 계발을 위해 이 책을 선택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 비해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 책이 가진 장점이 너무도 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저에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이 곧 주먹을 불끈 쥐는 것과 같은 다소 겸연쩍은 행동으로도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문학 작품도 아닌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 계발 서적에서 감동을 느꼈다면 어불성설일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이 책이 저에게 던져 준 의미가 깊었다는 얘기입니다.     


도(道)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진정으로 도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내부로 침잠해서 수양하다 보면 그 도를 깨우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전반적인 취지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바깥에서부터 뭔가를 끌어와 우리 자신을 꾸미려 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삶을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자기 계발의 세계에, 그리고 그런 몸부림에 비수를 꽂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이제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기 계몽을 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입니다. 여기서 계발과 계몽을 한자로 나타내면 각각 啓發과 啓蒙이 되는데 한자 그대로 낱말을 풀이하면 계발은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주는 것을 말하고, 계몽은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치중하는 자기 계발의 그 속내를 살펴보면 사전적인 의미에서 유독 슬기나 재능을 일깨우는 데에만 두드러집니다. 가장 단순한 논리로만 따져도 진정한 자기 계발을 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에 반해 자기 계몽은 슬기나 재능 따위-요즘은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 스펙이라고 부르겠지만-를 계발하는 것보다도 지식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는 전형적인 계몽의 과정을 거칩니다. 큰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이 자신을 계몽시켜 간다는 것이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자기 계몽을 하는 데 있어 상당 부분 지침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전망해 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다변화해 가는 사회에서 보다 주체성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계발의 급류에 휘말리지 말고, 자기 계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자기 계몽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자기 계몽은 자기 철학의 확립, 냉철한 현실 인식, 그리고 (그런 현실 인식이 바탕이 된) 새로운 우리 자신으로의 변화 시도 등의 세 가지 정도 하위 요소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급류에도 휘말려들지 않을 수 있는 굳건한 자기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자기중심을 확립시켜 주는 것이 바로 자기 철학일 것이고, 이것은 곧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의미할 것입니다.

굳은 자기 철학이 바탕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섞여서 살아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들을 허투루 보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동조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들을 두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고, 또 그런 현상들이 조만간 가져오게 될 부수적인 현상들도 예측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울물이 불어날 조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사람만이 급류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또 적절한 시기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습니다. 이런 생각과 행동들이 점차 내면화되어 가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지 그 방향까지도 충분히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이 줏대 있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진정한 책무성을 통감하게 됩니다. 이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감히 이런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면-은 사실 그럴 필요성이 어쩌면 전혀 없을 것 같은데도-책을 읽는다고 밥이 나온다거나 떡이 나오는 게 아니므로-, 단지 자신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 읽는다지만 그런 만족과 즐거움이 거기서 그치지 말고, 보다 주체성 있는 생각들과 좀 더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라든지 한때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루저녀 사태 등과 같은 구체적인 사례들을 두고도 그저 웅성웅성한다거나 아무런 비판적 관점 없이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부분에선 ‘아,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심히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전 감히 이렇게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현대인들을 망치고 있는 것은, 또 앞으로도 영원히 망치고 말 것은, TV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라고 말입니다. 이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감각이 동원되어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자신을 변화 및 발전시켜가야 하지만, 모든 더듬이가 오로지 시각적인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깊이 생각한다거나 이건 왜 이럴까 하며 분석하고 결론을 내릴 필요성조차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현상이 고스란히 매스컴에서 보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구할 수 있으며, 그리움이나 설렘 등과 같은 시시껄렁한 감정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든 버튼만 누르면 상대방의 얼굴을 화면으로 보며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발전의 뒤꼍으로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꼭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이제 조금은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 준 것만으로도, 또 왜 자기 계몽이라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이 책은 충분히, 적어도 저에겐 커다란 성과가 있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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