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게리 폴슨의 『손도끼』를 읽고……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뉴베리 상'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단 이 책, 게다가 저자인 게리 폴슨은, 어쩌면 한 번 수상도 어렵다는 뉴베리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책을 펴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는 건 그의 독특한 직업 내력-농장 일꾼, 트럭 운전사, 목장 일꾼, 사냥꾼, 선원, 군인, 배우, 가수, 연출자, 기술자, 교사, 편집자 등을 전전하다 작가로 정착했다-은 그의 글이 얼마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했을까 하는 궁금점을 유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작품이란 그런 모양입니다. 아는 만큼 그려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작가가 살아온 이력이 독특할수록, 이 게리 폴슨처럼 수많은 직업을 전전한 사람일수록 작품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손도끼』엔 그의 수많은 이전의 직업들에서 얻은 산 경험들이 바탕이 되었을 거라고 믿어집니다. 숲 속에서의 모든 정경들과 사물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공간은 고정된 채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숲 속의 그 변화 모습들을 놓치지 않고 일일이 묘사해 내는 걸 보면, 그냥 단순히 책상 위에서만 얻어지는 자료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드니까 말입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학기 중엔 엄마와 함께 지내고 방학 때에는 아빠와 함께 지내라는 법원의 명령이 있고 나서 방학을 맞이한 브라이언은 엄마-엄마의 선견지명이 무척이나 돋보이는 부분이다. 잠시나마 그저 작품 속의 훌륭한 복선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너무 눈에 띄는 설정은 아닌지 하는 고민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가 내미는 손도끼를 몸에 지닌 채, 아빠에게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가 조종사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비행기 속에서 급사하는 바람에 불시착하고 맙니다. 거의 생존의 위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겨우 살아난 브라이언은 불시착으로 인해 아무도 없는 삼림 속에 홀로 남겨지고, 그로부터 근 두 달을 혼자서 숲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겨우 열세 살이란 나이에 이런 상황에 처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물론 작가가 가상적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라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브라이언은 너무도 잘 이겨 나갑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런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서바이벌 프로그램 따위에서 다양한 생존 기술을 익혀 놓은 것도 아닐 것입니다. 거의 브라이언은 동물적인 생존 본능적 감각으로 말 그대로 맨손으로 시작해서 모든 주변의 환경들을 바꿔 나갑니다. 어차피 당장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음식도 해결해야 하고, 주변에 어떤 짐승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거지도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둠을 이겨내기 위해서 반드시 불이 필요한데, 라이터나 성냥도 없는 상태에서 마치 원시인처럼 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아파트 마당에 나가 저 역시 그런 식으로 불을 한 번 피워 볼까, 싶어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였으니까요.
원래부터 제대로 된 작품에 시비를 걸기 좋아하는 저이긴 하지만, 사실 작품 상에 있어 별다른 흠은 없었습니다. 어떤 작품이든 작품이란 타이틀을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주제 의식이 명확해야 합니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들 사이에서 그 관계가 아무리 많이 얽히고설키더라도, 혹은 사건이 단순한 것이든 아니면 머리가 으깨어질 만큼 복잡한 것이든 간에, 그 속에서도 반드시 잃지 않아야 할 것이 바로 주제 의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명확한 주제 의식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이 책의 첫 번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비행 불시착으로 인해 호수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순간부터 마지막에 구조되는 그 순간까지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서 이 지긋지긋한 숲 속을 탈출해야겠다는 집념이 눈물겹도록 두드러진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정확히 모를 만큼 깊고 깊은 숲 속에 내버려졌지만, 그 나이답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사려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생존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장에라도 이 책을 읽는 누군가가 홀로 무인도에라도 버려진다면, 적어도 이 책 하나 정도만 갖고 있어도 생존하는 데엔 조금도 손색이 없지 않겠나 싶을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깊고 깊은 외딴 숲에서 혼자서 살아남기' 가이드 책자 같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렇다고 누구도 이 책 하나만을 가지고 숲에 버려지길 원하진 않겠지만…….
작품의 두 번째 묘미는, 부모에게만 의존하고 아직 생각이 조금도 여물지 못한 미성년의 어린아이가 극한적인 죽음의 상황에서 점차 자연인(?)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들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달라졌어. 보고 듣는 게 모두 바뀌었어.' ☞ 본 책, 102쪽
'언제나 배 고파. 그래도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난 음식을 장만할 수 있어. 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안다는 거야.' ☞ 본 책, 141쪽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두려운 상황은 두려워한다고, 혼자 남겨진 그 상황을 불평한다고 해서 조금도 그 환경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무엇보다도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이 스스로 그 환경을 개척해야 한다는 걸 온몸으로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주인공 브라이언은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입니다. 아니 오히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이가 몇 배는 더 많은 저라도 이 점에서만큼은 그 아이에게 머리 숙여 배워야 할 부분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다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극적인 엔딩 효과를 위해서 더없이 필요한 것이라 해도,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속의 그 장엄한 팍스 아메리카나 정신 같은 게 느껴져 못내 아쉬운 부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조종사는 머리를 젖히고 브라이언을 유심히 살폈다.
"맙소사. 네가 걔지? 한 달 전, 아니 거의 두 달 전에 실종됐던…… 네가 바로 그 아이지…?"
……(중략)……
브라이어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말했다.
"난 브라이언 로브슨이에요."
그때 쇠고기 정식과 복숭아 휘프가 끓는 게 보였다. 브라이언이 손으로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좀 드실래요?" ☞ 본 책, 181~182쪽 발췌
어쩐지 영화 속에서 많이 본 듯한 모든 역경을 이겨 낸 주인공의 천연덕한 모습이 그간의 관심과 정감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한 아이의 눈물겨운 사투를 함께 지켜보면서 책을 끝까지 읽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