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을 읽고
보에티우스는 470년 경에 태어난 로마 사람입니다. 470년에서 475년 사이에 태어난 걸로 알려져 있어 사망 연대인 524년까지로 환산하면 대략 49~54세 정도까지 산 셈이 됩니다. 그는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콘술-흔히 집정관이라고도 부릅니다-을 역임한 이로서, 수사학, 논리학, 천문학 등에 능통한 것은 물론 4학(산술, 기하, 음악, 천문) 관련 저작에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신학 및 철학적인 주제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 활동을 펼친 철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란 것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영광과 명예와 부를 다 거머쥔 보에티우스에게도 시련이 닥쳐오게 됩니다. 동로마 황제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알비누스를 변호하던 보에티우스에게 반역죄라는 죄목이 덧씌워집니다. 이 일로 사형 판결을 받고 구금당하던 보에티우스는 524년에 처형당하고 맙니다. 탄탄한 출세 가도를 달리다 한 순간에 나락에 떨어지고 만 보에티우스가 구금당하고 나서 처형당하기 전까지 집필된 작품이 바로 이 『철학의 위안』입니다.
아마도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은 결국 눈물과 회한의 회고록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이 작품 전체에 걸쳐 흐르는 애통함이나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정면 돌파하려는 그 노력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을 고집하다 억울한 죄에 연루되어 사형을 언도받은 소크라테스의 태도와 비교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권세와 부를 누리던 보에티우스에게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혔을 때 아마도 그는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관직을 반납하고 쫓겨가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해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 예비되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한 편의 시가 나오고, 뒤이어 한 편의 산문이 나오는 식으로 반복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책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찌하여 불확실한 운명은
그토록 크게 바뀌는 것입니까?
죄인이 받아야 할 처벌은 결백한 자들에게 내려지는데,
그릇된 습속은 높은 옥좌에 앉아 있고
사악한 자들은 부당한 운명으로 고귀한 자들의 목을
짓밟고 있습니다.
빛나는 덕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지고
정의로운 자는
적들이 덮어씌운 죄를 견디고 있습니다.
거짓된 구실로 꾸며진 속임수도,
어떤 거짓 맹세도 저들에게는 해가 되지 않습니다. ☞ 본 책, 49~51쪽(제1권 시 4 중에서)
보시다시피 감옥에 갇힌, 혹은 역자의 말처럼 감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구금되어 있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서, 혼자만의 독백으로 모든 시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어딘가에서 홀연히 나타난 여신이 그런 보에티우스에게 믿음을 일깨워 줍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그 길이 그렇게 잘못된 길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나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낫겠구나. 너는 남의 것을 사용하였을 때처럼 고맙게 여겨야지, 마치 네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양 불평할 권리는 없다. 그런데 너는 어찌 되풀이하여 한탄하느냐? 나는 어떤 폭력도 네게 행하지 않았다. 부와 명예, 그리고 그와 같은 여타의 것들은 나의 권리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들은 나를 자신들의 주인으로 알아 나와 함께 왔다가 내가 떠날 때 함께 떠나간다. 감히 확언하건대, 만약 네가 잃어버렸다고 불평하는 것들이 네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도 너는 잃어버리지 않았겠지. ☞ 본 책, 64~65쪽(제2권 산문 2 중에서)
『철학의 위안』은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 상당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기번은『로마제국쇠망사』에서 이 작품이 키케로나 플라톤에 못지않다고 평가했고, 중세 후기에는 프랑스어로만 1천 편에 가까운 번역서가 쏟아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단테는『향연』과『신곡』에서 이 작품의 흔적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특히 신학 분야에서의 그 영향력은 더욱 지대했다고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책을 참고로 그의 주저인 『신학대전』에서 최고선-그도 그럴 것이 보에티우스가 시종일관 대화를 주고받는 상대자인 카메나 여신(뮤즈 여신들과 동일시되는)의 등장이나 철학적인 모든 논의에 있어 그가 부르짖어 마지않는 '신'이라는 존재를 철학적인 이상이나 이상향이 아닌 절대자인 신으로 충분히 오인할 소지가 크므로-을 설명하고 있고, 본 책의 5권에서 제시되는 영원성의 정의는 신과 시간에 관한 중세 논의에 있어 그 출발점이 되었을 정도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