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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29. 2023

작품이 힘을 얻으려면……

039: 막심 샤탕의 『악의 영혼』을 읽고……

막심 샤탕의 장기, 과학수사기법에 대한 남다른 지식이나 '피칠갑' 장면 묘사는 재능에만 기댄 결과가 아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르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기는 했지만 실제 발로 뛰며 취재를 하지 않으면 사실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작가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이런저런 잡일을 하던 시기에도 《악의 영혼》을 쓰기 위해서 범죄학과 범죄심리학 강의를 수강했고 실제로 부검에도 여러 차례 입회했다고 한다. ☞ 본 책, 「옮긴이의 말」中에서, 639쪽     


이 책은 뭐랄까, 정말 많은 것을 제게 느끼게 해 준 이야기였습니다. 원래부터 소설이란 것이 그냥 붓이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그런 류의 글은 분명 아니지만, 요즘과 같은 다매체 세상, 인터넷을 통한 무분별한 자료의 범람이 두드러진 세상에, 보다 더 객관적인 정황을 확보할 수 있는 글을 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재미는 있는데, 시쳇말로 뭔가 2%는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는 아마도 대부분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보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이런 식으로 책을 접하고 책 속에서 지혜와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물론 아주 가끔은 모방범죄를 구현하기 위해 참고하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어쨌건 간에 그러다 보니 우린 어떻게 하면 사람이 죽는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그 구체적인 상황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지도 못했고, 물론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흉기로 인체의 어느 부분을 가격했을 때 얼마만 한 타격을 받아야 사람이 죽게 되는지, 혹은 피를 얼마나 흘려야 생명이 위독한 시점에 이르게 되는지, (물론 이런 부분은 보다 전문적인 범죄수사학에 관련된 일이긴 하지만) 사자(死者)의 사망 시점이 언제쯤인지, 어떤 이유로 사망을 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선 더더욱 알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 이유 탓에 글을 쓰겠다는 마음만 앞선다면 주로 인터넷을 통해 떠도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런 수준이라면 이미 사실이라고 지칭할 수 없겠지만-들을 마구 나열해 놓기 일쑤일 테고, 독자에게 더 깊은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 보다 더 잔혹하고 조금은 변태적이고 괴기스럽게까지 이야기를 몰고 가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선 이 분야의 대가로 손꼽히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라는 명예를 사십도 채 안 된 나이(올해 48살)에 얻은 막심 샤탕은, 검증되지 않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무분별하게 도용해선 안 된다는 것과 보다 진정성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오랜 시간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관련 자료를 수집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부끄러우나 저 역시 평소에 제 머릿속에 담긴 낱낱의 지식(?)들을 주체하지 못해 글로 옮기곤 합니다. 포화상태라고 하지요? 그런 것들이 때로는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아지다 못해 바깥으로 마그마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고 할 때가 있곤 합니다. 아마도 그럴 때 잘만 표출된다면, 거기에 조금의 표현 기법만 가미된다면 그럴싸한 한 편의 스토리로 만들어지겠지만, 어떤 경우엔 과연 이런 산출물들을 뭐라고 봐줘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애매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차에 이 작품을 접한 것은 적어도 제겐 신선한 충격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당장에 어떻게든 눈에 띄게 글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습니다. 표현력의 한계와 지식의 빈약함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겠지만, 최소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구체적인 줄거리는 생략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싶어 과감히 머리도 꼬리도 자릅니다. 당연히 이 이야기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악한 얘기입니다. 저자가 그렇게 지칭했고, 감옥의 간수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그는 밀턴 보몬트의 눈동자에서 시뻘건 불길을 본 것 같았다. 그는 그 짧은 순간에 그 죄수의 영혼을 본 것이다.
'악의 영혼이야.'
그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67호실로 넘어갔다.
간수의 발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온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옆으로 내저으며 황급히 멀어져 갔다.
'악의 영혼…….' ☞ 본책, 「에필로그」中에서, 629쪽     


요즘과 같이 많은 지식들이 범람하고 또 TV에서도 범죄 및 수사 관련 프로그램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시점에, 어쩌면 누구나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식상하단 느낌이 들지 않았고,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책을 읽으면서 그다음 얘기를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범인의 정체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여기엔 스토리의 흐름에 있어 조금도 의구심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의 객관적이고도 전문적인 지식들(범죄심리학적인, 범죄수사학적인, 해부학적인……)을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여 이야기의 정당성을 그 자체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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