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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28. 2023

통도사 후기 1

백 마흔한 번째 글: 경계를 지어야 하는 것도 있다.

지금 이 글은 어쩌면 편견에 찌들어 오십 년 넘게 살아온 한 꼰대가 쓴 글일지도 모르니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략 10여 년 전, 해인사에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대웅전에 가깝게 다가가던 순간 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렸습니다. 청아하고 낭랑한 목소리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사찰 경내에 울려 퍼지던 목탁 소리는 스님의 음성과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역시 큰 절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뜻도 모르지만, 한창 독경 소리에 취해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정말 몰상식한 사람이군. 도대체 누고? 이런 곳에서 매너 모드 필수인 거 모르나?"

그때 독경을 하시던 스님이 한쪽에 목탁을 내려놓으시더니 왼쪽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었습니다. 정말 듣기 좋은데 왜 멈추셨을까, 하고 있던 스님이 목소리를 바꿔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독경 중에 스님이 폰을 받다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스님은 사람 아이가?"

옆에 있던 아내가 뭐 그런 걸로 호들갑을 떠느냐고 했지만, 전 그때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스님도 사람이라고 아내가 말했으나, 일견 아내의 말에 틀린 데는 없으나, 전 스님은 일반적인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방금 전 1차로 통도사를 보고 내려왔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둘러보면서 사찰도 예전의 사찰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하게 산속에 틀어박힌 절, 그것이 바로 사찰인 것입니다. 사찰로 들어가기 전 좌우로 빼곡히 들어찬 모텔들, 맛집, 커피 매장, 흔히 말하는 꽤 오래전에 입적하신 큰스님들이 보시면 통탄할 일입니다. 심지어 식당가 뒤편에 마련된 문화거리 끝에도 모텔이 들어서 있습니다.


게다가 사찰 내 어디를 가도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공양미는 물론이고 양초도 돈을 줘야 살 수 있고, 심지어 등도 무상이 아닙니다. 물론 시쳇말로, 땅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라지만, 종교도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게 씁쓸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경내에서 이런 안내문을 보고 기겁할 뻔했습니다.

누가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뭘, 그런 걸로 호들갑을 떨고 그 카노? 스님은 사람 아이가?"

"그래, 스님은 사람 아이다. 아니, 사람이면 안 된다. 그칼라꼬 머리 깎고 여 들어왔나?"


군군 신신 부부 자자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전 두 가지를 더 보태서 다음의 말을 만들려고 합니다.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승승 사사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하듯, 스님도 스님다워야 하고, 선생도 선생다워야 한다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웬만한 것은 경계를 짓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쩌면 경계는 편견을 조장하고 편 가르기를 일삼기에 화합 및 통합에 결정적인 장애를 초래합니다. 하지만, 분명 경계를 지어야 하는 어떤 것들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교가 세상과 밀접하게 교류를 하면서 교리를 펼쳐야 한다지만, 최소한 성직자라는 관념에서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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