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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29. 2023

엠비티아이(MBTI)

백 마흔다섯 번째 글: 저를 보고 '인프피'라고 하더군요.

뭔가가 급속도로 유행이 번지면 그 본질이 변질될 때가 많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알 수 없습니다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것들이 한동안 지배적인 이슈로 자리잡을 때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한때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별자리를 물으며 공감대를 찾으려 했고, 또 언젠가는 혈액형을 두고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느닷없이 가는 곳마다 'MBTI' 열풍입니다.


오죽하면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너, T야?'하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고, 이젠 그런 말까지 아까운지 일종의 이모티콘처럼 행동으로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교실에서도 제가 저희 반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저의 'MBTI'입니다. 몇 달 전 심심풀이로 테스트를 해보니, 'INFP'가 나오더군요. 그런데 사실 제 기본적인 입장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IQ 검사'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듯, 이 'MBTI 검사' 역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기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일단 각 문항마다 7가지 정도의 보기에서 자신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고를 수 있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자신이 어디쯤에 속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고, 심지어 어떤 문항들은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하고 있는 일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다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항 자체가 애매했습니다. 말이 난 김에 제게 나온 'INFP'에 대한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마음을 지닌 성격
-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나며 몽상을 즐기는 성격
- 음악과 예술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차림
- 이상주의적이고 공감 능력이 높으며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원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낌
- 외롭거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때가 있음
- 자신의 독특한 강점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방황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음
- 자기 성찰적인 성격으로 자기 생각과 감정에 집중함
- 공감 능력이 높고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
- 높은 공감 능력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사고방식에 쉽게 영향을 받음
- 주변의 수많은 문제에 신경쓰느라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 있음
-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즐기며 다양한 이야기와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생각하곤 함
- 몽상과 아이디어에만 집중하느라 실제로 행동하지 못하게 될 때도 있음


측정 결과를 옮겨 놓고 보니 온갖 좋은 말 일색입니다. 그런데 굳이 몇 가지만 짚어보자면 저와 맞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전 에너지와 열정이 그다지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무딘 편입니다.
전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전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전 명백히 자기성찰적인 성격의 유형은 아닙니다.


그 외에는 훑어보니 대체로 저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MBTI 검사 결과를 두고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별자리나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려 할 때, 맞는 것도 있고, 더러는 안 맞는 부분도 있듯 MBTI 검사 결과에 대해서도 저 역시 그런 자세를 견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서글픈 것은 이 MBTI가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하는 심리 검사라고 하는데, 염불(융)보다는 잿밥(MBTI)에 더 관심이 많은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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