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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30. 2023

가면과 연기

백 마흔아홉 번째 글: 바담 풍, 바람 풍

한때 이런 얘깃거리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훈장님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아마도 그분은, 지금식으로 진단하자면 'ㄹ'자 발음이 잘 안 되나 봅니다.

"자, 따라 하거라. 바담 풍."

"바담 풍."

아이들은 순진하게도 들리는 대로 따라 합니다. 훈장님이 담뱃대로 책상을 냅다 두드리며 말씀하십니다.

"어허, 아니라니까. 바담 풍."

"바담 풍."

"이놈들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이번엔 제대로 따라 하거라. 못 하면 종아리 맞을 줄 알거라."

훈장님이 발음하는 그대로를 따라 하던 아이들은 뭐가 틀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자, 바담 풍."

훈장님은 자기가 발음을 잘못한 건 생각 안 하고, 계속 아이들이 '바람 풍'이라며 올바르게 발음하길 원합니다.


제가 느닷없이 이 얘길 꺼내는 이유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쩌면 이것과 그리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교사 본인이 그다지 도덕적으로 완성되지 못했다고 해도 도덕을 가르쳐야 하고, 그림을 못 그리거나 악기를 못 불어도 미술이나 음악을 가르쳐야 합니다.

만약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모든 것에 조예가 깊다면, 그 혹은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맥가이버는 완전히 저리 가라지요. 왜냐하면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못 해도 할 줄 아는 척해야 하고, 모르는 것도 알고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할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사가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연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잘 알고 있는 내용만 가르쳐야 한다면, 과연 제가 어떤 과목을 그리도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교사가 모르는 어떤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갖출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면 과연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모름지기 교사는 몰라도 잘 아는 척, 전혀 할 수 없는 것도 할 줄 아는 척 연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직종에 있는 분들은 어느 정도는 가면을 써야 합니다. 만약 자기의 본 성격대로 직장을 다닌다면 제대로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 이유에서 전 세상의 그 어떤 직업 못지않게 교사 역시 때에 따라 가면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지론은 그렇습니다. 교사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혹은 그녀는 무단횡단도 할 수 있고, 가끔은 공중도덕이나 법을 어길 수도 있으며, 심지어 남을 속이거나 바람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조건이 붙습니다. 적어도 아이들 앞에선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철저히 가면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얘길 하면 반감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더 쉽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 아내와 심하게 싸우고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말도 걸지 않습니다. 집에 가면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방으로 곧장 가 틀어박혀 지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들에게 화목한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 이번 달에 카드를 흥청망청 써서 벌써 결제예정금액이 월급여를 앞지르고 말았습니다. 대출도 알아보고 정 급하면 카드 돌려 막기를 하면서도 아이들에겐 계획성 있는 소비 및 지출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신호 위반이나 불법 유턴과 과속 주행도 가끔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교통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게다가 정작 본인은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툭하면 자르면서, 발언권을 얻지 않고 마음대로 말하는 아이에게는 대화 예절을 지키지 않는다며 지적합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선생님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늘 가면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퇴근 후에 마음이 놓여나는 걸 느끼는 것은 하루의 일이 끝나서가 아니라 하루 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비로소 벗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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