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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30. 2023

교사와 부모

백 마흔여덟 번째 글: 누구의 잘못일까요?

어제 오후에 잠시 볼 일이 있어 밖에 나갈 때 아파트 출입문 근처 바닥에 퍼질르고 앉아 컵라면을 먹는 아이를 봤습니다. 그 녀석 참 맛있게 먹네, 하며 저도 저녁때 컵라면이나 먹어볼까, 하던 참이었습니다. 얼핏 봐도 많이 봐주면 6학년쯤, 딱 5학년 정도의 얼굴이었습니다. 물론 아는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문제의 사진 속의 모습과 같은 광경을 보고 만 것입니다. 사실 제가 가르치는 아이가 아니거나 최소한 제가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면, 아무리 상대가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요즘과 같은 때엔 그 어떤 말도 건넬 수 없는 법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과자를 다 먹고는 봉지를 땅바닥에 버리고 그냥 가는 아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얘야,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저는 그래도 초등학교 선생이 그 정도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넌 뭐냐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합니다. 재수 없으면 그 새파란 아이한테 십 원짜리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못 본 척할 걸 괜히 얘기했나 싶은 마음이 들던 그때 날 선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저씨가 뭐길래 남의 아이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예요?"

보나 마나 그 아이의 엄마입니다. 저는 괜스레 치한으로 오해받을까 싶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댁의 아이가 쓰레기를 땅바닥에 버리고 가려해서 줍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아주 매섭게 아이의 팔을 잡아채면서 얼른 가자고 보채더군요. 전 그래도 '아, 예'하며 그 엄마라는 사람이 쓰레기를 주울 줄 알았습니다. 바삐 발걸음을 옮기며 구시렁대는데 그 말이 제 귀에 와 또렷이 박혔습니다.

"자기가 선생이면 선생이지 어디 와서 선생질이고? 그렇게 잘하면 저거 아나 잘 가르치면 될 거 아이가."

당연히 그 쓰레기는 제가 주워서 버렸고요.


누군가는 저보고 그래도 명색이 선생님이면 그래선 안 된다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막상 그런 소리를 듣고 나면 그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괜한 일에 내가 나섰구나'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길바닥에서 컵라면을 먹는 아이를 봐도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 아이도 다 먹고 나서 뒤처리를 어떻게 할 것 같다는 짐작도 했지만 말입니다. 컵라면 잔해가 뒹굴던 자리에서 불과 15m 정도 앞에 대형 쓰레기통이 있었지만, 아이는 먹었던 그 자리에 저렇게 버려둔 채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해서 가르치지 않는 부모님, 그런 아이를 보고도 잘잘못과 사리 분별력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거나 가르치지 못하는 선생님,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요?

살면 살수록 꼰대가 되고 마는 이 세상이, 급기야 개꼰대가 되어 버리는 이 현실이 그저 씁쓸하기만 합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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