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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03. 2023

눈먼 돈

학교에 있다 보면 교육청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행사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물론 이 교육청 차원의 행사는 결국 각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관내의 꽤 많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행사를 추진하게 됩니다. 전년도 연말이나 당해연도 연초에 해당 사업을 추진할 학교를 공모한다는 공문이 내려옵니다. 업무담당자 입장에선 학교 자체 예산 만으로도 넉넉한데 굳이, 하며 넘기지만, 관리자의 열의 열은 '그냥 준다는데 왜 안 받냐'라고 하며 무조건 신청하라 합니다. 물론 업무담당자가 그 돈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의 액수에 따라 다르지만, 부수적인 행정 절차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학교 자체 예산 2백만 원이 책정된 업무가 있는데 그 돈(목적사업비)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몇 차례 불려 갔습니다. 신청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번에 받은 예산의 액수는 따지고 보면 소액이라 할 수 있습니다. 60만 원밖에 안 되니까요. 심한 경우엔 몇 천만 원이 넘기도 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받으면 그 업무담당자는 그 해에 그냥 죽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업무에 치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는 건 교사의 입장에선 조금도 반갑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산이 있다는 건 그만큼 어떤 행사를 추진해야 된다는 것이고, 관리자의 성향에 따라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예산이라는 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 업무담당자가 아무런 물품도 구매하지 않거나 어떤 행사도 추진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학교 자체 예산은 안 써도 그다지 큰 탈이 없습니다. 연말쯤 가서 다른 용도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적사업비로 지정되어 내려온 예산(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에서 내려온 돈)은 하늘이 두쪽 나는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다 써야 합니다. 만약 쓰지 않고 남겨두면 교육청에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고, 같은 명목의 예산을 다음 연도엔 받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업무담당자의 무능이나 과실로 치부되기도 하고, 관리자들은 안 그렇다고 하지만 다음 해의 업무 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확률이 99.9%는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예산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600,000원을 딱 맞출 수 있을까요? 사업을 계획하다 보면 총 집행 금액이 601,000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이 1,000원 때문에 1,000원이 더 싼 업체를 찾느라 하루이틀 정도는 쉽게 허비하곤 합니다. 하다 못해 배정된 예산의 10%가 넘는 잔액이 남는 경우엔 이 돈을 교육청에 반납해야 되는데, 그냥 계좌송금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왜 다 못 썼는지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업무담당자 입장에선 그 정도쯤이야 싶지만 관리자들에겐 어림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게 관리자 본인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내년엔 교육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꼭 필요한 곳에 돈을 못 쓰는 일이 발생하겠지만, 개인적으론 환영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눈먼 돈'을 줄였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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