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11월이면 학교에선 그다지 큰 행사가 없는 달입니다. 밀린 지도나 나가고 이런 저런 다양한 활동들을 아이들과 해볼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부터 열흘 안에 치러야 할 큰 행사가 2건이나 있고, 제 개인적으로 2건의 보고서를 별도로 써야 합니다. 그게 대략 열흘 안에 다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정말이지 요즘은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학교에서 일을 좀 하다 나왔는데, 내일은 밤 10시까지 일한다고 해도 과연 다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 물론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필요한 행사냐고 말입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무리수를 둔 나머지 실시하는 행사입니다.
어딘들 관리자가 다 그렇겠지만, 학교는, 그중에서도 초등학교는 교장선생님이 누구냐에 따라 배가 산으로 가기 일쑤입니다.
'우리, 이런 거 한다. 어때?'
딱 이유가 이것 하나입니다. 뭔가를 내세우기 위한 목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대대적으로 학부모까지 초청했으니 행사의 규모가 커져버린 건 당연한 이치라 하겠습니다.
사실 모든 것은 아주 교묘하게 이뤄졌습니다. 처음 이 행사를 계획할 때만 해도 학부모 초청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가을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되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학부모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하면서 확실한 명분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마는데, 우리가 어떻게 반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행사가 바로 모레부터 이틀간 치러집니다. 거의 2천여만 원이 넘는 막대한 눈먼 돈이 투입됩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곳이 학교입니다. 사실 어떤 이유를 들든 행사를 치른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백해무익하다할 순 없을 겁니다. 단지 그 논리 하나만 믿고 우린 묵묵히 따라갈 뿐입니다. 우리는 근거리에서 우리의 세금이 이렇게 낭비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는 씁쓸해하지만, 관리자에겐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학부모를 불렀으니 수요일과 목요일은 사람들로 학교는 인산인해를 이룰 것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아무것도 변한 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아무런 변화 따위는 없을 것입니다. 정년퇴직까지 남은 12년이 왜 이렇게도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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