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한 해의 농사에 대한 나름의 반성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매너리즘이라고 하나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그런 생각에 젖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당장 내일모레 정년퇴직인 것도 아니고,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제대 말년 병장과 같은 마음가짐이 되어가는 저를 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을 다잡아가곤 합니다만, 아무래도 뭔가가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교직의 특성상 그런 악순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저라는 사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사람이나 유명을 달리 한 2023년, 크고 작은 일들이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조심스러운 예견이긴 합니다만, 물론 앞으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건 불변의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그렇게 극단적이면서 회의적이면 어떻게 하냐고 하겠지만, 그건 오히려 제도적 측면에서의 변화를 꾀하는 건 그만큼 현명하지 못한 태도일 수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맞습니다. 교육은 변해야 합니다. 지금의 교육은 한창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 이래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뭔가가 변한 사례가 있던가요? 뭐,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손에 꼽을 만하거나 거의 기억에 없을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뭔가가 변하려면 아래에서부터 변해야 합니다. 물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지만, 신기하게도 변화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가야 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교육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부가 아니고, 교육부장관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깨어 있어서 그게 바탕이 되어 움직여지는 그 흐름이 바로 변화의 물줄기를 트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본다면 적어도 저는 올 한 해 교육자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잘 살았다는 말씀을 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뭘 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일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게 곧 매너리즘에 빠진 평범해빠진 일개 교사에 지나지 않는 게 되는 것이겠습니다. 통렬히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앵무새처럼 항상 되풀이하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올해의 아쉬웠던 것은 내년으로 넘겨서 꼭 이루도록 하라느니,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 말입니다.
이제 저도 내년이면 어언 교직 25년 차에 접어듭니다. 24년과 25년은 1년 차이지만, 그래도 사 반세기에 이르는 세월이라면 이제는 어느 정도 저의 경력에 책임을 져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해가 갈 때면 늘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커지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