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왕도는 없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또 저만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특단의 대책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유명한 글쓰기 강사가 강연에서, 자기가 글을 쓰면서 적용해 효과를 본 다양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때론 고개를 주억거리고, 무릎을 치면서 탄식하며 듣습니다. 게다가 한 마디라도 놓칠까 봐 빠짐없이 메모를 해가며 듣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 적용해 보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강사가 순 허풍만 떤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가 제시한 것은 분명 글쓰기의 비책이 맞습니다. 단, 강연을 듣고 온 저에게가 아니라 그 강사에게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수십, 수백 종의 글쓰기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 블로그로 책 쓰기를 하라고 합니다. 매일 100일 동안 거르지 말고 글을 써 보랍니다. 누군가는 또 1000일 글을 쓰면 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동안 쓴 글을 다듬어 출간계획서와 함께 출판사에 보내 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모두 각자의 방법을 적용해서 책을 출간하는 등, 나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들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해 보십시오. 과연 그들의 말처럼 될까요? 장담하겠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만약 해보니까 되더라,라고 하는 분은 다른 방법을 적용해도 틀림없이 됩니다.
글쓰기 강사와 글쓰기 책 작가들이 그렇게 효과 만점이라고 떠들어대는 그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는데도 왜 우린 안 될까요? 그건 그때까지 우리 각자가 다져놓은 글쓰기의 바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살을 빼고 싶어 피트니스 센터에 갔습니다. 둘은 PT를 받기로 합니다. 만약 그곳이 제대로 된 피트니스 센터라면, 그리고 회원의 체중을 감량시켜 줄 정도의 노하우를 가진 강사라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처방을 내릴 것입니다. 각자에게 더 효과적인 운동 방법과 운동 시간을 제시할 것입니다. 심지어 서로 다른 식단조절법을 안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 체격도 다르고, 체형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두 사람에게 같은 운동법, 같은 운동 시간, 그리고 똑같은 식단을 제공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실력 없는 트레이너일 것입니다.
만약 이 점에 고개가 끄덕여지신다면 이제 우린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글쓰기에 있어 특단의 대책 따위는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전 분명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직은 전 아무것도 아니라 저만의 글쓰기 비책을 여전히 못 찾았지만, 확실히 다른 데 있지 않고 제 안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묵묵히 글을 써 나가다 보면 그 비책을 찾게 될 거라는 것도 말입니다. 물론 그 비책은 다른 사람에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 될 겁니다.
전 항상 저에게 되뇝니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일단 쓰고 보자. 지금 쓰고 있는 글이 글 같은지 아닌지도 고민하지 말자. 그럴 시간에 한 편의 글이라도 더 쓰자.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으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가랑비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티끌이라는 티끌은 죄다 긁어모아 태산을 만들려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