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꿈
백 예순 번째 글: 개꿈이겠죠?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 꾼 꿈이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왜소한 체격의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어느 커피 전문 매장에 앉아 있습니다. 익숙한 구조의 스타벅스나 파스쿠찌도 아닙니다. 몇 번 안 가 본 투썸플레이스도 엔제리너스 커피도 아닙니다. 앉은자리에선 가게의 로고도 보이지 않고, 출입문 유리에 선명히 찍힌 매장의 이름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꿈이 그러하듯 불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한 누군가를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봅니다.
이제 카메라의 시점은 어느새 카페 한 구석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이동합니다. 뒷모습이 가까워 보입니다. 어쩐 일인지 흰머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원래 흰머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아는 정도는 꿈에선 일도 아니니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어 줄곧 누군가를 기다리나 봅니다. 꿈이 시작되자마자 그의 주변을 맴돌던 시야가 그에게로 점점 다가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문득 그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가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합니다. 꿈속의 제가 너무 젊습니다. 게다가 정확히 제 얼굴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가 맞는 듯 그의 모든 생각들이 제 감정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쨌건 간에 그는 저이거나, 최소한 제가 만들어낸 제 아바타가 틀림없는 듯합니다.
그는, 아니 저는 스물다섯 살입니다. 갓 제대하고 한창 꿈 많던 시기입니다. 누구를 기다리나 했더니 이내 출입문을 들고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저는 손을 들어 제 위치를 알리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합니다. 그녀는 사십 대 초반의 누군가입니다. 대개 꿈이 그러하듯 그녀가 누구인지 꿈에선 명확히 알고 있지만, 꿈 너머에서 꿈을 지켜보고 있는 저는 그녀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내내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저 사람이 왜 저기 있지?'
제가 되어버린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뒤져봐도 그녀가 누군지 알아낼 길은 없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대뜸 말을 꺼냅니다.
"나, 4개월밖에 안 남았대요."
무슨 소리냐고 제가 묻고 그녀는 병원에 갔었던 일과 몇 년 전에 받았던 암 수술이 재발했다는 것, 그리고 온몸에 전이가 되어 더는 손을 쓸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녀가 설명하는 동안 눈물방울이 돋는가 싶더니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제가 앉은자리는 눈물바다가 됩니다. 한참을 울고 있으니 누군가가 와서 저를 안고 토닥여 줍니다. 그녀입니다.
아무리 봐도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 보이는데도 꿈속의 저는 그녀에게 안겨 계속 웁니다. 그녀는 왜 그동안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합니다.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있던 저는 그녀에게 언제부터 제 마음을 눈치챘냐고 물어봅니다. 그녀는 설마, 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저를 보고 활짝 웃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점점 지금의 제 나이가 되어 가고 있었고, 그녀는 점점 어려져 중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어 버립니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꿈에서 깼습니다. 왜 이런 꿈을 꿨을까요? 게다가 꿈속에서는 확실히 알고 있던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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