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연인
백 쉰아홉 번째 글: 요즘 사람들은 얼굴이 참 두껍네요.
적어도 제 나이 또래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파스쿠찌에 왔는데, 제가 있는 1층의 여러 좌석들 중에 사람들이 주문을 넣고 음료가 나오는 동안 잠시 앉아서 기다리곤 하는,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된 자리가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여섯 명이 앉을 수 있긴 합니다만, 전 매장 점원이 측면으로 바라 보이는 자리에 앉곤 합니다. 즉 삼각형의 구조로 본다면 '밑변'에 해당하는 자리입니다.
보통은 이 삼각형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으면, 주문한 뒤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이 웬만해서는 이곳에 앉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앉으면 좋든 싫든 저와 얼굴을 거의 정면으로 마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로 드나드는 연령층을 생각해 본다면 나이가 50을 넘어선 꾀죄죄한 남자 손님을 쳐다보고 싶어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한 여자가 자리에 털썩 앉습니다. 아무리 많이 봐도 22살도 안 된 여자입니다. 솔직히 있는 그대로 보자면 영락없이 고등학생쯤의 여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30초도 안 되어 한 남자 손님이 옆에 와서 앉습니다. 제 얼굴과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둘을 손을 잡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눕니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겠으나 대화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면 대략 이런 식이 되겠습니다.
"나, 이뻐?"
"응. 너 정말 이뻐!"
"얼마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선 네가 제일 예뻐."
안 그래도 티라미슈 조각 케이크를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으려는 찰나였던 지라 속이 느글거리기 시작합니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별 수 없으니 저는 듣고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 음료를 들이켜선 안 됩니다. 그들은 아무 의식 없이 주고받는 대화라고 해도 자칫하면 저는 입에 머금고 있던 음료를 내뿜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가 제일 예쁜데?"
순간 그 말에 제가 대답을 할 뻔했습니다.
"너의 모든 게 다 예뻐."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제법 이성교제를 한 것 같은 내공이 느껴지는 손님입니다. 하마터면 저와 똑같은 생각은 말로 내뱉은 남자 손님에게 불쑥 악수를 청할 뻔했습니다.
음료가 나오는 시간이 오늘은 왜 이렇게도 길게 느껴질까요? 얼른 제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맞잡은 손을 얼굴에 비비고, 여자는 이내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얹어 놓기까지 합니다.
"너네들 이러는 거 너희 부모님들은 아시니?"
이런 말을 문득 내뱉고 싶지만, 아무리 거시기해도 그것만은 참아야 합니다. 제 딸만 잘 단속(?)하면 되는 것이지, 남의 집 아들딸이야 저러건 말건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철없어 보이는 어린 남자 손님이 저보다는 한 수 위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남자가 던진 한 마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를 보면서 젊다는 것이 저래서 좋은 것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