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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Nov 06. 2023

나에게 술은

백 예순한 번째 글: 내게 술은 영원한 딜레마

저는 술을 전혀 못합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양주는 앉은자리에서 두 병 정도 마십니다. 그래서 가끔은 입만 고급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합니다. 아무튼 맥주는 물론이고 소주도 저는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특히 막걸리는 쥐약 중의 쥐약입니다. 오죽하면 1년에 제가 마시는 술이, 병맥주로는 2병 정도, 캔맥주로는 3캔 정도밖에 안 됩니다. 물론 막걸리는 아예 마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막걸리를 마시면 거의 사나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몸속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다른 사람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 아니겠나 싶긴 하지만, 의사가 아닌 저로선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바로 이 말입니다.

“언제 시간 나면 술이나 한잔하자!”

교대 2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1학년 후배를 맞이했을 때에도 저는 줄곧 그 말만 했습니다.

“난 밥은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지만, 나한테 술 얻어먹을 생각은 하지 마라.”

따지고 보면 어디까지나 핑계겠지만, 이 술 때문에 사실 저에게서 떨어져 나간 친구가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그들은 애초에 제 친구가 될 녀석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고작 술을 못한다는 이유로 저를 멀리한다면 그런 행동을 일삼는 녀석의 인성은 보나 마나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학부 시절 때 꽤 많은 사람들에게서 미움 아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못했던 온갖 이야기들을 다 쏟아내곤 했습니다. 술까지 진탕 마셔가며 할 얘기, 안 할 얘기를 다 꺼내 놓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러고 있기 때문이고, 정확한 내용은 기억을 못 하지만, 어쩐지 그런 술자리를 한 번 가지고 나면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복병 아닌 복병이 되고 맙니다. 그 많은 녀석들의 온갖 쓰레기 같은 이야기(특히 여학생 품평 따위의)들, 상대방에 대한 불만과 더러는 욕설까지 그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지만, 최소한 저는 그 모든 내용을 기억하고 있으니,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면 그 어느 누구도 저를 부르지 않으려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제가 술을 먹지 않으니 부르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을 제가 탐탁지 않다는 뜻입니다.


술을 못한다는 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전 그동안 술 때문에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습니다. 초임 시절 교장선생님이 저한테 한 말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무슨 머스마 새끼가 술도 못 먹노?”

그는 그 회식 자리가 사석이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꺼낸 말이었을 것입니다. 술 먹으라는 강압, 마치 이 술을 먹어야 자신들이 속한 교육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듯, 모두가 제 잔만 쳐다보곤 하던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입니다.


초임 2년 차 때 처가가 될 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에도 지금의 장인어른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위라고 달랑 하나 있는 게 무슨 술도 못 먹냐?”

처가의 장모님 형제가 8남매인 데다 장모님이 가장 맏이인 걸 감안하면 명절 때마다 모여드는 사람들은 저에게 독약을 손에 든 악한들이나 마찬가지로 보였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더 이상은 술을 먹지 않는다고 하면 강권하지는 않습니다. 처가 식구들도 이젠 제가 술을 못하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번 권해 보고 안 마시면 내버려 둡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제가 포기해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아무리 제가 술을 못해서 그런 거라고 설명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처가 식구들을 무시하고 싫어하니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 오해 아닌 오해가 풀리는 데까지 아마도 족히 십여 년은 걸린 듯합니다만, 이미 오해가 풀릴 즈음엔 그로 인한 골 역시 메꾸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진 뒤였습니다.


사실 저는 술과 관련해서는 그 어떤 에피소드도 추억도 없습니다. 어쩌면 참으로 재미없는 인생을 산 셈입니다. 1년을 가야 술을 먹는 날이 채 사흘도 안 되니까 말입니다. 가끔은 남들 하는 정도는 술을 마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늘 맨 정신으로 생각하고 책 읽고 글을 쓰는 제 자신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습니다. 술은 저에게 풀리지 않는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영원히 마음의 벽을 쌓아두게 될 녀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저는 술을 먹는 날이 1년에 3일도 안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술을 먹자고 한다면 제 평소 주량 이상의 술을 마시게 될 것 같긴 합니다.


당연히 미래의 제 사위가 될 위인은 누가 되든 간에 술 잘하는 녀석은 일단 낙제입니다. 그건 평생 술에 대한 제 생각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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