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할 말이 참 많습니다. 가족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심지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차고도 넘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런 제 말을 들어줄 그 누군가가 옆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더 아이러니한 일이 생깁니다. 저의 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결국은 제가 끝내 그걸 글로 쓰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글을 쓰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외롭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고독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혼자가 되어 버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혼자가 된 고독을 누리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말로 할 때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몇몇의 누군가가 듣기만 하면 됩니다. 앞에서 제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이 방법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바로 그 방법이 글쓰기입니다. 생각을 혹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면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대에 누군가가 제 앞에 없더라도 언제든 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로 하지 않고 글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가슴속에 응어리진 게 많다는 얘기입니다. 누군가가 들어줄 이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지요. 가끔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떠안은 듯 행세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주변 사람들은 다 생각이 없고 저만 깨어 있는 것처럼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 많은 할 말을 담아두기엔 버겁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를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말로 표현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도, 자식도, 심지어 아내마저 제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가족 내에서도 뚜렷한 경계가 그어져 웬만해서는 가족의 이름 하나만 믿고 서로의 테두리 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게다가 시쳇말로 꽤 쿨한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그들의 경계 안에 발 담그길 원하지 않듯 그들 역시 다가오지 않습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세상, 혼자의 힘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심정으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렇게 외치지 않으면 혼자만 알고 있는 그 비밀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담아두고 또 눌러놓기만 한다면 스스로를 지탱해 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하실 말씀이 많으신가요? 게다가 주변에 딱히 그 말을 들어줄 분도 없나요?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글을 쓰시면 됩니다. 언제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또 다른 자신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의 구애는 없습니다. 공간적으로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쓰기를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어떤 논리성이라도 갖추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았으면 합니다. 글은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서 잘 썼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꾸미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칭찬하는 글은 또 다른 그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 깎여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냥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적으시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쓴 글이 바로 저이고, 어쩌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당신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다분히 못난 모습이어도 괜찮습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데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마주 볼 수 있다면 그 글을 통해 우리는 한 뼘 더 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