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의 차이
백 예순일곱 번째 글: 답이 없는 상황
만약 집사람과 제가 여행을 가는데 그날 기차가 1시간 넘게 연착하는 일이 생긴다면, 저는 '아 그렇구나' 하며 차도 한 잔 마시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기다립니다. 발을 동동 굴린다고 해서 기차가 제시간에 들어올 리는 없으니까요. 반면에 집사람은 역무원에게 항의하거나 당장 코레일에 전화하는 성향입니다.
저는 여행 갈 때 가는 표만 끊어놓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입니다. 어차피 혼자 움직이니까요. 반면에 청도 운문사를 간다면 집사람은, 청도역에 내리면 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또 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까지 들어가는 버스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 그래 저래해서 몇 시에 도착하는지까지 명확히 알아야 움직이는 스타일입니다. 심지어 운문사 개방 시각이 언제인지 그래서 괜히 일찍 가서 기다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지도 고려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둘의 성향이 이렇게도 다르니 신혼여행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둘만의 여행을 못 간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휴일 낮 12시에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저는 얼른 어디라도 가자, 하는 성향인데 반해, 집사람은 정확한 일정표는 물론이고 예상 경비까지 산출되어야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그런 말을 합니다. 어딜 가자는 사람이 이제 일어나서 어딜 갈 수 있냐고, 지금 일어난다는 건 어딜 갈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저 나름 들뜬 마음으로 6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저한테 와서 지금 이후의 시간 계획을 브리핑해 보라더군요. 제 인생 자체가 무계획의 전형은 아니지만, '쉼'을 위해 혼자서 하루 움직이는 여행에까지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싶진 않습니다. 결국은 군대 가는 아들이 가는 날까지 집안일을 해야 되냐고, 쉬는 날 그렇게 쏙 나가버리는 제가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더군요.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부터 제대로 대거리하다 보면 이마저도 못 가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가기 전부터 마음이 많이 상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너무 속이 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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