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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Nov 21. 2023

장르의 파괴

백 일흔일곱  번째 글: 장르라는 게 따로 있냐고요?

요즘 출근길에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가는 길에 꽃을 발견하곤 합니다. 미적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일단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댑니다. 저장하는 의미도 있지만, 주변인들에게 안부 인사 차 보내기 위한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문학 장르 중에 디카시라는 게 있습니다. 말 그대로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한 장에 그 사진과 어울리는 짤막한 시 한 편을 곁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올라간 때 못 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한 글자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내용인지는 헷갈리는데, 예를 들자면 고은 시인의 시 중에 이런 내용의 짧은 시가 있습니다. 이때 이 시와 어울리는 사진을 한 장 찾아 보여준다면 이게 바로 디카시가 됩니다. 아닙니다.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우선은 어떤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떠올린 생각이나 느낌을 시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순서가 되겠습니다.


사실 이 디카시라는 형식의 글을 두고 장르를 운운할 계제는 아닙니다. 굳이 장르로 따지자면 이런 유형의 글들을 시라고 지칭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겠습니다. 디카시는 시보다 사진이 우선합니다. 특정한 사진에 끼워 맞춘 것, 그것이 바로 디카시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겠습니다. 소설로 치면 범람하는 웹 소설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웹 소설, 디카시, 포토 에세이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다소 고리타분한 논리일 수 있으나, '순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문학이라고 말하기가 좀 뭣한 게 사실입니다.


가끔 소설을 쓴답시고 혼자서 끙끙대고 있으면 아들이 웹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곧잘 하고 합니다. 일단 그러면 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소설과 웹 소설의 차이가 뭐냐고 말입니다.

아무튼 제아무리 글이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라지만, 너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는 이런 변화가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모든 꽃에는 저마다 특징을 드러내는 색깔이 있듯 장르 또한 이들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경계가 있어야 마땅한 법이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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