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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21. 2023

위작은 위작대로 가치가 있다.

047: 플라톤의 『편지들』을 읽고……

이번 대화편은 플라톤이 몇몇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신인들은 여러 사람이지만 비교적 시라쿠사 참주들이었던 디오뉘소스 2세와 디온 등이 주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서신을 보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리스에서 이루지 못했던 정치적인 이상 국가를 시라쿠사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플라톤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잘 나가는 집안에 태어났고 정치적 야망을 키우던 플라톤에게 현실 정치계로의 진출을 접게 만들었던 소크라테스의 누명으로 인한 죽음 이후 그래도 플라톤은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직접 그 세계에 발을 딛고 펼쳐나갈 의향은 접었으나 자신이 가진 정치적 소신 및 철학을 바탕으로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기에, 그의 철인왕 정치론은 이 대화편 안에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총 열세 편의 편지들이 담긴 이 대화편은, 각 서신들마다 그야말로 길이에 있어서도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서신은 1쪽 분량도 안 되는 게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서신은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들 중에서 가장 분량이 짧은 것들에 버금갈 만한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몇몇 서신들은 실제로 플라톤이 쓴 것이 아니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상당한 정도로 위작 유통 시장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명인사가 서명한 편지들을 유수의 도서관들이 좋은 가격을 쳐서 사들이던 풍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편지들을 확보하려는 도서관의 노력과 위작 저술 및 유통을 통해 돈을 벌어 보겠다는 몇몇 비양심적 지식인들의 그릇된 욕심이 상충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각각의 서신들에 대해 정리한 25명의 학자들의 진작 및 위작 판별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곱째 편지 : 진작 25명
여덟째 편지 : 진작 24명, 위작 1명
여섯째 편지 : 진작 17명, 위작 6명, 미정 2명
셋째 편지 : 진작 13명, 위작 9명, 미정 3명
열한째 편지 : 진작 12명, 위작 8명, 미정 5명
넷째 편지 : 진작 12명, 위작 11명, 미정 2명
열째 편지 : 진작 11명, 위작 10명, 미정 4명
열셋째 편지 : 진작 10명, 위작 13명, 미정 2명
둘째 편지 : 진작 10명, 위작 14명, 미정 1명
다섯째 편지 : 진작 9명, 위작 13명, 미정 3명
아홉째 편지 : 진작 9명, 위작 13명, 미정 3명
열두째 편지 : 진작 5명, 위작 19명, 미정 1명
첫째 편지 : 위작 25명 ☞ 본 책, 18~19쪽     


이렇게 봤을 때 어쩌면 궁금증 하나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작의 수도 만만치 않지만 진작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여섯째 편지 정도라면 몰라도, 적어도 다섯째와 아홉째와 열두째 편지는 플라톤의 대화편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놓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연구한 학자 25명 전원이 위작으로 간주한 첫째 편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목록들에서 빠져야 할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위의 진작 및 위작 판별 상황은 어디까지나 연구자들에 한해서 의미 있는 정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철학에 대해서 깊은 식견이 없는 저 같은 일반 독자들에겐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제가 읽어 본 바로는 진작이든 위작이든 각 서신들을 통해 플라톤의 생각을 읽어내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서신들이 위작으로 판명이 났다고 해도 위작이 생성된 과정이나 그 배경을 보자면, 위작이라는 것들은 진작의 모사물일 테니 최소한 플라톤의 사상들에서 비껴 날 수 없기도 할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위작 문제는 전문 학자들에게 맡겨도 좋을 사안이다. 2천여 년 동안 플라톤의 저작 모음에 포함되어 진짜 작품으로 간주된 역사를 가진 문헌들이고, 백번 양보하여 모두 가짜라 해도, 플라톤과 아주 가까운 시점에, 아주 가까운 인물들에 의해 써진 것들이어서 플라톤의 로고스와 프락시스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크게 손색이 없는 자료들이다. 한마디로 말해 플라톤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해도 읽을 가치가 현저하게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 본 책, 35~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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