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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26. 2023

소크라테스를 사랑한 청년

048: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1,2』를 읽고…… 

소크라테스가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된 죄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인데, 그가 타락시킨 대표적인 젊은이로 당대에 거론되던 이는 바로 알키비아데스였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그 당시 아테네에 유행했던 동성애 문화를 반영이라도 하듯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역시 그런 관계였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적어도 이런 점들만 보더라도 본 대화편은 충분히 흥미를 끌 수 있을 듯합니다.


플라톤의 26편의 대화편들에서 지금까지 위서로 간주되거나 혹은 많은 철학자들이 그가 쓴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있는, 본 대화편인『알키비아데스 1,2』는 알키비아데스가 막 정치에 입문하려는 시기를 극 중 시점으로 잡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적인 자기 인식 없이 정치를 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잘못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델피 신전에 새겨져 있던 말-이 이곳에서 철저히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유력한 가문의 명성과 부를 배경으로 성장한 청년입니다. 외모가 출중하여 어릴 적에는 잘 생긴 외모로 아테네의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부인네들을 독수공방 하게 만들었고, 동성애의 대상이 되는 연령을 벗어나서는 그리스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해 남편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알키비아데스는,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 솜씨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성격이 오만하고 사치를 좋아하여 숱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가 소크라테스를 만난 후로는, 그를 따르고 그가 권하는 철학과 삶의 방식에 열중했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은 대화편 구석구석에서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들 중에 알키비아데스만큼 소크라테스의 말에 순응하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 준 이는, 당대의 대부호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크리톤(『소크라테스의 변명』과 그의 이름을 딴 대화편인『크리톤』에서도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을 제외하곤 없었던 듯합니다.


아테네에 정치적 분쟁을 불러일으켜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아테네의 최고의 장군이었지만 손쉽게 조국을 배신하곤 했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테네 민중들도 여러 차례 사형을 언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국을 배신하면서도 그 언저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던 알키비아데스처럼 민중들 역시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알키비아데스 I』은 '인간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려면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자기 인식'을 본질의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는 대화편이라는 뜻입니다. 대화편 초반부에서 소크라테스는 다른 이들은 단념했지만 자신만은 알키비아데스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화편 말미에서 '(알키비아데스)의 육체가 시들어서 다른 사람이 떠나더라도 마지막으로 곁에 남을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 자신이라는 말로 강조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 역시 단순한 동성애자로 불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대화편인『향연』에서 알키비아데스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사랑하는 소크라테스를 육체적으로 유혹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를 고백했고, 그런 가운데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진정한 사랑과 지혜의 세계로 이끌어 준 분이 바로 소크라테스였다고 말하는 점에서나, 그 당시 팽배했던 동성애 풍조에 따르면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소크라테스의 동성애 관계는 일반인들과 지극히 다른 모습을 띠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연장자)이 사랑을 받는 사람(연동이라고 일컫는데, 나이가 더 어린 미소년을 뜻한다고 함)에게 무한한 사랑을 부어 주어 그의 영혼을 고양시켜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논의가 이루어진 뒤 알키비아데스는 이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이 순간이 알키비아데스가 무지를 자각하는 순간인데, '무지에 대한 지'를 가진 이가 가장 지혜로운 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 보면, 비로소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와 '공동으로 철학적인 탐구'(일방적으로 지혜를 가르치는 소피스트와는 달리 소크라테스 혹은 플라톤은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그들 철학의 목표로 삼고 있음)의 여정을 걸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셈입니다.


한편,『알키비아데스 II』는 '기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대화편입니다. 난데없이 웬 기도냐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엔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앎'과 '신중함'이라는 주제를 더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대화가 시작되는 초입에서 신에게 소망을 빌러 가는 알키비아데스를 만난 소크라테스는 섣불리 신에게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며 그를 말리고 있습니다. 다소 생뚱맞은 논의를 이끌어가던 소크라테스는 분별 있는 사람과 무분별한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 논하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서도 논합니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좋은 것을 알더라도 가장 좋은 것을 알지 않는 한, 부분적인 좋은 것에 대한 앎은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하면서, 분별 있는 사람이란 가장 좋은 것을 알고 그것을 가장 이롭게 행하는 사람이라는 논변을 펼쳐 갑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신과 인간들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좋을지를 확실히 배우기 전까지는 침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화를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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