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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02. 2023

오래오래 글을 쓰려면…….

전업 작가는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글을 써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역량과는 별개로 오래오래 글을 쓰는 게 가능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한 편의 글 혹은 하나의 작품을 써도 그걸 돈으로 환산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그는 생활을 이어가야 하니까요.

반면에 저 같은 작가지망생은 따지고 보면 굳이 글을 오래오래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잘 써질 때에는 글을 많이 쓰면 되고, 잘 안 써질 때에는 펜을 놓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왜 글을 쓰지 않느냐고 면박을 주지 않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체력장이란 필수적인 활동이 있었습니다. 대략 6개 정도의 종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오래 달리기는 늘 적지 않은 어려움을 안겨 준 종목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을 겁니다. 당시에 저와 조금 앙숙지간인 녀석이 한 놈 있었는데, 두 사람 다 상대에게 지기 싫어했던 습성이 있었습니다. 체력장 본 측정을 앞두고 연습할 때였습니다. 그 녀석과 저는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마치 100m를 달릴 때처럼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놈들아! 그러다 완주 못한다. 천천히 뛰어라!"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든 말든 그 녀석과 저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달렸습니다. 달려야 할 거리가 1000m였으니 운동장 다섯 바퀴였습니다. 세 바퀴 반쯤 뛰었을 때 그 녀석과 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운동장 한가운데에 대자로 뻗고 말았습니다. 그때 느낀 게 있었습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일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면 일을 끝마칠 수 없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100m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아직 남은 900m를 생각하면 결코 전속력으로 달려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마라톤 선수가 아닌 이상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체력이 다른 사람보다도 뛰어나고 달리기도 잘하는 사람들은 1000m 정도는 마치 100m를 뛰듯 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속력으로 3000m를 혹은 5000m를 달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글쓰기도 근본적으로는 오래 달리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달려야 완주할 수 있는 것처럼, 글쓰기도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 글을 써야 오래오래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쉽게 지치게 되고, 얼마 못 가 글쓰기를 멈춰야 되는 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는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써왔습니다. 일기처럼 어떤 공책 같은 데에 글을 쓰기도 했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며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쓰지는 못했습니다. 항상 처음 시작 때에는 굉장히 거창하게 시작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흐지부지되곤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글쓰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그건 오래 달리기를 하면서 처음부터 100m를 달리는 것처럼 전속력으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생각들, 너무 완벽해지려는 욕심들, 게다가 글을 쓸 때에는 몸에 잔뜩 힘까지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쓴 글이 질적으로 좋을 리가 없지요. 무엇보다도 글을 오래오래 쓰려면 몸에 힘을 뺄 수 있어야 합니다. 적절한 화장은 얼굴을 돋보이게 하지만, 과한 화장이 변장에 다름이 아니듯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글은 쓴 사람 못지않게 독자가 먼저 거부반응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전 최근에 글을 쓰면서 몸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해왔습니다. 몸에 힘을 빼려면 우선은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글을 써서 그걸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생각
내가 쓴 글로 인해 구독자를 몇 명 정도 선까지 늘리겠다는 생각
내가 쓴 글을 브런치스토리 메인에 노출시키겠다는 생각


아, 물론 이런 생각을 누군가가 갖고 있다고 해서 그분이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라고 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저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생각들은 버려야 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저는 오래오래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제 글이 책으로 출간되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구독자가 천 명 정도 선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브런치스토리 메인에 제 글이 노출되지 못하는 이유 또한 같은 이치입니다. 아직 제 글이 누구의 심금도 울리지 못하고 있고, 누군가가 손꼽아 기다릴 만큼 풍부한 읽을거리나 생각의 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진단을 내리니 서글픈 일이긴 합니다만,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냉정한 진단은 필요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오래오래 글을 쓰고 싶습니다. 다소 이기적인 바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엇보다도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일단은 제가 쓰고 싶은 글을, 먼저 읽어서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제 글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그 이후의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글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제가 쓰는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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