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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Dec 02. 2023

 아침 일기 310일 결산

 아침 일기 쓰기 310일째가 되었다. 


직장생활의 답답함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 주었고,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아내가 사 준 만년필은 원동력이 실제 행동이 되도록 해 주었다. 



나의 아침은 ‘쓰기’와 함께 시작한다. 눈을 뜨면 입 안을 한 번 헹구고, 생수를 찾아 벌컥벌컥 한 잔 들이켜고는 곧장 서재 방으로 향한다. 그때부터 앉아서 시계도 확인하지 않고, 핸드폰을 확인하거나 책도 보지 않고 곧장 노트 한쪽을 채울 때까지 묵묵히 써내려 간다. 어디 내놓을 글이 아니다. 아내에게 보여줄 글도 아니며, 오직 나 자신만이 저자이자 독자인 글이다. 눈 뜨자마자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은 상태의 글쓰기는 다른 무엇이 아닌 내 속에 있는 것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을 만들어 낸다. 


로디아 노트 125페이지, 미도리 노트 170페이지 두 권을 모두 썼다. 두 공책 모두 A5 크기이며, 노트 한쪽에 1500자 정도 쓰이는 것을 감안하면 40만 자 이상 되는 분량이다. 페이지 수로는 295페이지이다. 일반 시중에 출간되는 책 크기도 A5 사이즈가 많고, 페이지 당 800자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내 일기는 분량만 놓고 봐서는 책을 2권 정도 낼 수 있는 분량이 된다. 물론 어디 꺼내놓을 생각도 없고, 꺼내놓는다 하더라도 그중에 일부만 꺼낼 수 있는 정도일 테니 분량만 놓고 비교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꽤 뿌듯한 마음이다. 만년필을 배송받은 날로부터 지금까지 부지런히 썼다. 처음엔 1시간 일찍 출근해 커피숍에서 쓰기도 하고, 육지에 갈 일이 있을 땐 숙소 안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쓰기도 했다. 코로나에 걸려 몸이 불덩이 같을 때에도 펜을 움직일 힘만 있다면 썼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썼다. 쓰기만 하고 자주 다시 펼쳐보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의 첫 생각이 기록이 되어 남아있다는 사실은 나를 꽤 든든한 기분으로 만들어 준다. 


아침 첫 시간의 기록은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정수를 모아놓은 글이다. 아직 아무 정보가 입력되기 전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으므로 다른 것의 영향이 최소화된 글이다. 내 안에서 솟아 나오는 것,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것들이 글이 되어 나온다. 하루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는 없으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이 된다. 글자로 빼곡한 일기장을 들여다볼 때면, 내가 살아온 인생의 핵심들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무척이나 든든한 마음이 된다. 


첫 시간의 글쓰기는 여러 면에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앞서 적은 대로 자신의 역사가 된다. 눈 뜨자마자 쓰는 글은 그 순간 가장 중요한 핵심이 글이 되어 나오기 때문에 그 기록의 모음은 곧 자신의 역사가 된다. 이 글은 평범한 내 삶을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로 만들어 준다. 하루하루 역사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게 한다. 


둘째로 아침 첫 시간에는 검열관의 힘이 가장 약하다는 것이다. 글이라도 좀 쓸라 치면 매번 나타나 귀찮게 하는 이 검열관 녀석이, 아침 첫 시간에는 어쩐지 별 말이 없다. 어차피 누구에게 보여줄 글도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생각하지 않고 내 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받아 적는 동안에는 검열관도 아무 말하지 않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가만 앉아 있다. 검열관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쓰는 글, 나 자신이 저자이자 독자가 되는 글이다. 아침마다 만년필을 쥔 내 손은 지면 위를 나는 듯하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글, 검열에 신경 쓰지 않는 글, 내 안에 있는 자유로운 예술가 녀석을 마음껏 풀어줄 수 있는 글, 나는 매일 아침 이 최대치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셋째로 첫 시간의 글은 의식의 찌꺼기들을 청소하는 글이 된다. 자는 동안 꾸었던 꿈이라든지, 몇 날 며칠 나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마음에 남아 있게 마련이다. 눈을 뜨자마자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면,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생각들도 수면 위로 드러난다. 글을 씀으로써 고민하던 것, 걱정하던 것들을 지면에 풀어놓고 나면 어쩐지 금방 해결이 되거나 정돈이 된다. 30분간 종이를 뚫고 들어갈 듯 몰입하여 써내려 가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때로 몸은 조금 피곤한 때가 있지만, 아침 글쓰기가 주는 개운함 때문에 언제나 조금 더 자는 일은 뒷전이 된다.


글이란 결국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글이 없다면 생각은 적절한 형태로 표현되지 않을 것이며, 발전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아침에 글을 씀으로써 자연스럽게 글 쓰는 연습을 하게 되고, 생각을 꺼내어 정돈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이런저런 정보들로 머리가 혼란스러운 상태도 아니다 보니 이 시간이야 말로 글쓰기에 최적화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매일 첫 시간에 30분 동안 쓰는 글쓰기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검열관을 이기고 나를 있는 그대로 꺼내는 연습을 하게 해 주었고, 거기에 더해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도 시켜주었다. 30분간의 쓰기가 310일간 쌓이면 40만 자도 넘는 글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내 안에 있는 자유로운 어린아이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되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 자신을 꺼내놓기가 두려워 남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한층 더 ‘나’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도 같다. 


글을 쓰면서 점점 나는 내가 되어 가는 중이다. 일과 삶에 대하여 고민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직장을 그만두었다. 수년간 나를 괴롭혀오고 떠나지 않던 일에 대한 고민을 하나씩 풀어 가고 있다. 글은 멈춰있던 생각을 발전시키는 도구가 되었고,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나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글은 나만의 가치관을 갖게 해 주어서, 예스맨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청산하게 도와주었다. 이제는 내가 정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NO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예스맨을 좋아하지만 실은 예스맨이 좋아서라기보다, 자신에게 잘 맞춰주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삶에서 중요한 것은 예스가 아니라 ‘노’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지킬 것이 있는 사람만이 ‘NO’를 외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색무취로 살아왔다. ‘나’ 라기보다는 ‘남’과 같은 인생에 가깝지 않았을까. 전형적인 삶, 사회적 표준에 가까워지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지평선처럼 멀어지는 것인 줄도 모른 채.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되어 간다. 


나의 첫 시간은 언제나 같을 것이다. 그것이 몇 시가 되었건 간에, 눈 떠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글쓰기가 될 것이다. 300일이 3000일이 되고, 10000일도 되겠지. 노트 한 권은 두 권, 세 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액기스가 모였으면 좋겠다. 이 글들은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며, 물살에 떠밀려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던 흔적이 될 것이다. 


미라클 모닝은 잠을 줄여 가며 네시 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가장 게으른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이다. 사람의 가장 큰 힘은 생각하는 힘이라고 한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사는 것을 삶의 미덕으로 삼는다면, 자신에게 있는 힘의 가장 큰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첫 시간에 쓰는 글은 누구에게나 기적을 가져다줄 것이다.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인생을 살게 해 줄 것이며, 내면에 억눌려 있던 자신을 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또 각종 정보로 가득 차 있는 머릿속을 정리하는 도구가 되어서 정돈된 상태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눈 뜬 직후 여러분의 30분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30분 더 일찍 일어나는 것이 고역이라 여겨진다면 잠들기 30분 전 나는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는가. 속는 셈 치고, 30분만 일찍 일어나 손으로 뭔가를 적어보는 건 어떨까. 여러분이 누구든, 그 순간 미라클은 시작될 것이라 확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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