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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05. 2023

기차 안에서 글쓰기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 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 하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 기억이 맞다면 서울 시스터즈라는 여성 3인조 트리오가 부른 노래로 알고 있습니다. 별 뜻 없이 당시에 이 노래를 즐겨 흥얼거렸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기차라는 교통수단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제가 타고 있는 기차는 낭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굳이 명명하자면 일상성이란 말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기차를 타고, 저녁에 근 무렵 기차에 몸을 실으면 사실 이건 낭만적인 게 아니라 습관적인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습관적인 것들 속에서 또 하나의 찰나의 틈을 열었습니다. 노곤한 몸을 좌석에 잠시 묻었다가 이렇게 또 한 편의 글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소재가 없으면 어떻고 주제가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제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차창 밖으로 요란하게 펼쳐지는 불빛들, 사실 또렷하게 눈동자에 각인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희미한 실루엣조차도 없는 무형의 형체들 속에서 어쩐 일인지 마음이 크게 놓입니다. 두어 시간은 더 늦게 기차에 올라 몸은 노곤해도 저는 딱 이맘때의 차창 밖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눈에 그려져 더없이 좋습니다.


어느새 기차가 서고 저는 내렸지만, 한 십여 분은 더 기차 안에 제 마음을 두고 내리기로 합니다. 플랫폼을 통과한 기차가 환한 조명을 벗어나자마자 이내 어둠 속으로 온몸과 마음이 빨려 들어갑니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으면 저 아득한 심연 속으로 이끌려 들어갈 테지만, 두 눈을 치켜뜨고 어둠을 주시합니다.


그 어둠 속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결이 들려오고, 얼굴이라도 마주 대한 듯 반가운 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갈 더 많은 날들이 그려집니다. 뜬금없이 설레는 마음이 오늘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줍니다.


자, 이젠 내려야 합니다. 수 km를 앞서 달려간 제 마음을 얼른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합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기차에서의 글쓰기는 언제나 행복한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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