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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25. 2023

빈둥댈 자유

이백 열 번째 글: 가끔은 멍 때리고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모처럼 만에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명백한 저만의 자유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1년 중에 과연 그런 날이 저에게 며칠이나 있을까요? 기본적인 청소와 정리 정돈을 끝낸 뒤에 낮의 대부분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루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오늘은 성탄절이 아닌가요? TV라고 하면 혐오하다시피 하는 제가 리모컨을 들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굴러다녔습니다. 평소의 모습으로 보면 사실 제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그 책에서는 분명, 우리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캠핑을 가서 불멍을 하고 있듯, 어떤 인위적인 노력도 배제한 채 뒹굴거릴 자유 또한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 역시 어쩌면 저조차도 모르는 참된 저를 찾아가는 모습 중의 하나일 수 있다고 했고, 그렇게 빈둥거리는 중에 하는 모든 일들은 결국은 더 나은 저를 찾는 과정으로 수렴된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하루를 빈둥거리고 있는 것도 나름은 '쉼'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쉼'은 요즘 시쳇말로 '힐링'이라는 말을 대체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원 없이 막무가내로 떠도는 '힐링'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전 최근 들어 이 낱말 대신 '쉼'이라는 말을 쓰고 싶을 뿐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은, 뭔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은 그 과정 내내 맞닥뜨리게 되는 이 '쉼'의 순간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빈둥거리는 것도 잘해야 한다는 것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어떻게 해야 잘 빈둥거리는 것인지 모릅니다. 다만 오늘 하루는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었을 뿐입니다. 적어도 오후 12시부터 4시 정도까지는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저를 몰아세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무려 네 시간이면 제가 쓰고 싶어 하는 글을 최소한 5~6편은 쓸 수 있는 시간인데, 하는 생각도 일단 접기로 했습니다.


원래 누군가가 보고 싶은데 그 만남의 시간을 뒤로 미루면 그리움의 골은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생각 하나로 뒹굴거리겠다는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 이런저런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냥 오후 시간은 그 생각에서조차도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막상 5시 정도가 되었을 때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싶어질 것이고, 물론 그럴 때 글을 쓰면 마치 손에 날개라도 돋친 듯 글은 일사천리로 써나가게 되지 않을까요?


딱 하루, 그중에서도 대략 네 시간 정도만 마음껏 자유를 주기로 결정하고 일단은 방바닥에 몸을 눕혔습니다. 한쪽 팔로 고개를 받친 채 옆으로 누워 TV를 봤습니다. 볼 만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한동안 채널을 고정한 채 TV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소리와 장면들을 머릿속에 담았습니다. 보던 것이 끝나면 이내 다른 채널로 옮겼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화면에 비치는 내용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렇게 가끔은 TV나 보면서 속칭 '멍 때리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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