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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Dec 25. 2023

화이트 성탄

0561

8년 만에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자연이 연출한 고혹적인 장난.


발신자를 숨긴 선물 같다.

오래 기다려온 소식 같다.

사랑스런 네 귀엣말 같다.

어느 수도사의 묵상 같다.


인파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바라본다.


슈톨렌Stollen을 먹으며 작은 볼륨으로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낯선 성탄 성가를 듣는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가장 가난하고 고요한 사건이다.


어둑하고 조용한 방안에 비스듬히 기대어 그 먼 일을 그려본다. 오늘만큼은 상상이 종교가 된다.


세상이 온통 눈으로 찍어 그린 점묘화의 캔버스.


눈송이가 사뿐히 지상에 내려앉을 때마다

슬픔이 영롱해지고

아픔이 뒤척이고

미움이 새로이 몸을 틀어 아롱진다.


다시 걸어가야겠다 고쳐 바라봐야겠다 깨끗해진 손을 내밀어야겠다 말간 얼굴로 미소 지어야겠다.


눈 위를 걸으며 다지는 다짐은 눈 길 위에 발자국으로 새겨지고 누군가가 그 위를 걸으며 공증하고 서약하고 켜켜이 겹쳐 언약한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길은 거대한 계약서가 된다.


그래서 눈길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신중한 것이다.



https://brunch.co.kr/@voice4u/420

https://brunch.co.kr/@voice4u/378

눈길을 밟는 일은 아름다운 서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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