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드디어 5주 간의 겨울방학에 들어갑니다. 해외에 간다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운 분도 적지 않지만, 전 이번 방학 때도 1/3이 넘는 날을 출근하게 됩니다. 뭐, 외국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부럽진 않습니다. 그건 그들의 삶이고, 저에겐 또 저만의 삶이 있으니까요.
저에게 방학이듯 마찬가지로 저희 반 아이들에게도 방학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그런 아이들을 탓할 순 없습니다. 우리 역시 어린 시절엔 그랬으니까요. 이럴 때 담임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방학계획서를 나눠줄 때 항상 두 가지만 강조합니다.이 두 가지만 수행하면, 방학계획서에 있는 잡다한 과제는 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오기 2. 나만의 특별 과제 수행하기
첫 번째 과제는 다소 장난처럼 들릴 소지가 있습니다만, 6학년 때 전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여학생 한 명이 방학 중에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평생에 남아, 제가 맡은 반의 제 1과제는 무조건 '살아서 돌아오기'입니다. 아무리 많은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해도 다치거나 죽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두 번째 과제는 그야말로 개인별로 다른 과제가 되겠습니다. 아직도 자전거를 못 타는 친구가 아빠에게 자전거를 배워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게 된다든지, 전혀 연주를 하지 못하는 악기를 배워 서너 곡의 동요를 연주한다든지, 축구선수가 꿈인 친구가 무회전킥 성공을 목표로 축구 연습을 한다든지 따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27명 아이들 각각의 성향과 취향이 다른데, 획일적인 과제를 제시한다는 건 이치에도 맞지 않으니까요.
그런 이유에서 흔히 공통과제로 제시되는 EBS 겨울방학생활 프로그램 시청, 독서, 일기 쓰기 등을 굳이 하라고 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은 책이 있으면 읽어보라며 소개만 해줄 뿐이지 절대 독서를 강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독서가 유익한 건 사실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그걸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도 어디까지나 저는 기호품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오늘 아이들에게 각자가 수행할 특별과제를 써서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기엔 고민의 깊이가 얕았지만, 적절한 지도 조언을 첨가한 뒤에, 아이들이 선정한 특별과제를 승인했습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저의 특별과제는 단편소설 3편 쓰기입니다. 아이들에게 과제를 하라고 했으니 저도 해야지요. 그런데 마침 저와 똑같은 과제를 선정한 여자아이가 있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방학이 끝나면 그 아이에게 서로의 소설을 바꿔서 읽어보자고 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