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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29. 2023

어떤 가랑비

이백 열다섯 번째 글: 항상 중간이 가장 어렵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지요? 1초 정도만 서 있어도 흠뻑 젖는 소나기가 있듯 우산을 쓰지 않고 다녀도 될 만한 그런 비도 종종 있습니다. 겉보기는 그렇다고 해도 막상 우산 없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옷이 젖어 있기 마련입니다.


1년 속의 혹은 달 속의 하루는 지극히 짧은 시간입니다. 어쩌면 그 흔한 '매일'들 중의 하나이니 없어도 될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하루일 테니 기억에 남을 리도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이 가랑비와 같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하루하루가 모여야 한 달이 가고 1년이 흘러가니까요.


오늘까지 포함해서 올해도 이제 딱 3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달력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로 대칭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12월 29일과 1월 3일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와야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월 3일은 새해가 시작한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다분히 희망적인 반면 12월 29일은 어딘지 모르게 회의적이기까지 합니다. 1년을 정말 잘 살아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으니까요.


며칠 전 누군가가 저에게 새해에는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계획을 말했더니 그 많은 걸 어떻게 다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게 아니냐는 말로 들렸습니다. 아직도 그 나이에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냐는 투로도 들렸습니다. 불교에 심취해 있는 제 친구 놈은 차차 비워가야 할 나이에, '어째 너는 갈수록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많아지냐'는 말도 했습니다. 너무 하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이듯,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하려는 것 역시 바람직하진 않다는 얘기겠습니다. 뭐든 나서지도 말고 뒤쳐지도 말고 딱 중간만 하란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중간이 가장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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