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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01. 2024

아이들과의 약속

036.

2024년 1월 1일 월요일 맑음 


근 3주 만에 일기를 다시 쓰게 되었다. 뭐, 사실 어찌하다 보니 그런 점도 없진 않았지만, 학년말 성적 사정 기간과 맞물린 데다 다소 귀찮았다는 점에서도 미루다 미루다 이런 사태에 이른 것 같다. 사실 육필로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 로망이 있긴 하지만, 효율성이나 수월성 측면에선 아무래도 뒤떨어지는 것 같아 오늘부터 일기(혹은 일지)는 다시 타이핑 시스템으로 돌아가려 한다.


3일 전 겨울방학식을 하던 날, 난 아이들과 하나의 약속을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각자가 선정한 '나만의 특별 과제'는 수행하자고 말이다. 우리 반에서 실시하는 '나만의 특별 과제'는 말이 좀 거창한 것이지, 뜯어보면 사실 별 게 없는 것이다. 그냥 획일적인 방학 과제에서 벗어나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것,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뒤에 자신이 정하고, 편의상 담임인 내게 조언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나만의 특별 과제'이다. 물론 이 과제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다. 당연히 담임인 나도 수행해야 한다.


내가 아이들과 약속한 특별 과제는 바로 단편소설 3편 쓰기이다. 어찌 보면 참 간 크게도 그런 터무니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소설이라는 것이 뭐, 앉아서 생각한다고 해서 뚝딱, 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왜 그런 약속을 했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난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과 이렇게 약속을 해놓으면 3편을 못 써도 하다 못해 1~2편 정도는 쓰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 여름방학에도 난 두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물론 내용에 있어 아이들이 읽기 좀 뭣한 부분이 있어서 표지와 소설 출력본 형태만 보여줘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아이들 중에서 나와 똑같은 과제를 선택한 아이가 한 명 나왔다. 그 여자아이는 평소에도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아이인데, 당당하게 단편소설 3편을 쓰겠다고 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면 난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안 하고는 못 배기게 되는 셈이다.


어차피 모든 아이들이 이 특별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개학하는 날, 최대한 많은 아이들이 그 성취감에 젖어 기쁜 얼굴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등교하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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