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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03. 2024

퇴소식에서

이백 스물한 번째 글: 달라진 아들의 모습.

한 시간 전부터 연무관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800여 대라고 했으니 최소 1500명 이상은 왔다고 봐야 합니다. 어딜 둘러 보나 군인보다는 민간인의 수가 훨씬 압도합니다. 퇴소식이 열리기 30분 전부터 장내 정리가 시작됩니다. 9시 30분, 아직은 교관이나 소대장 같은 이들은 보여도 훈련병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10시 정각이 되어 군악대의 연주가 흘러나옵니다. 훈련병들이 양쪽 측면 통로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자기 자식을 찾는 소리에 분주해집니다. 가족들이 앉은 관람석 쪽을 등지고 출발한 훈련병들은 하나 같이 똑같은 모자에 똑같은 군복을 입고 있으니 뒷모습만으로 누군지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순간 이런 것도 일종의 직업병인지 전통적인 운동회 때 아이들이 개선문을 통과하며 청팀과 백팀으로 도열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각이 칼같이 잡힌 군인들의 열병식에 비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훈련병들에게서 꽤 절도가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자기 집에선 응석받이였을 녀석들이 말입니다. 나중에 듣자 하니 이 퇴소식 예행연습에만 4시간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측면의 모습을 보일 때만 해도 술렁이기만 하던 좌중이, 정면의 모습을 보인 순간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떡해? 살 빠진 것 봐!"

아마 그때 제일 많이 들려왔던 말일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 눈에 들어온 아들놈도 그새 얼굴살이 핼쑥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칫 식이 지루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흘러갔습니다. 30분쯤 걸릴 거라고 하더니 역시 군대는 칼이었습니다. 대략 30분 정도 지나는가 싶더니 식이 끝났습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예상했듯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거수경례를 하던 순간, '어머님 은혜'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리고 큰절을 하던 그 순간에도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가장 감정이 치밀었던 건 아들의 왼쪽 가슴에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줄 때였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녀석과 함께 했던 지난 20여 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태어나서 기고 앉고 서고 뛰고 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이리저리 다녔던 기억이, 손을 잡고 다녔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군인이 되었다니,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보다 이제 머리 하나는 더 클 정도로 장성했지만, 아직은 그래도 제겐 늘 어린애로 보였는데, 오늘 보니 확실히 상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 왕복 400km를 숨 가쁘게 달려갔다 왔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사진 출처: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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