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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Jan 04. 2024

김유정의 '길'

The Journey by KIM, YOO-JUNG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에세이 [번역은 반역, 희수공원의 번역행동학]



우리 삶의 여정이 어디에서 멈출지는 아무도 모른다. 메멘토 모리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삶을 돌보기보다 자만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마음을 경계한다. 하루를 살아도 내 삶의 여정의 끝이 오늘인 양 최선으로 굳건히 살아갈 것이다. 한 단어 한 단어 힘주어 끝까지 결연히 읽는다.


영어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이며 한국어와는 다른 내 마음을 울리는 언어다. 자꾸 눈이 가고 귀 기울이게 되고 되짚어 읽고 또 읽게 되는 글들을 나만의 집착과 강박으로 내 곁에 묶어 두는 수단이기도 하다. 틀린 표현, 잘못 이해된 감성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내 깊이의 부재임을 안다. 발견할 때마다 수정해 나갈 것이다.


[원문 by 김유정, 소설가]


며칠 전 거리에서 우연히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나를 반겨 다방으로 끌어다 놓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던 끝에 돌연히 충고하여 가로되,


“병환이 그러시니만치 돌아가시기 전에 얼른 걸작을 쓰셔야지요?" 하고 껄껄 웃는 것이었다.


진정에서 우러나온 충고가 아니면 모욕을 느끼는 게 나의 버릇이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옆에 놓인 얼음냉수를 들어 쭈욱 마시었다. 왜냐하면, 그는 귀여운 정도를 넘을 만치 그렇게 자만스러운 인물이다. 남을 충고함으로써 뒤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그리고 거기에 어떤 만족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청춘이었던 까닭이다.


얼마 지난 뒤에야 나는 입을 열어 물론 나의 병이 홀연히 나을 것은 아니나, 그러나 어쩌면 성한 그대보다 좀 더 오래 살는지 모른다, 그리고 성한 그대보다 좀 더 오래 살 수 있는 이것이 결국 나의 병일는지 모른다 하고 그러니, 그대도,


“아예 부주의 마시고 성실히 사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그러고 보니 유정이! 너도 어지간히 사람은 버렸구나, 이렇게 기운 없이 고개를 숙였을 때 무거운 고독과 아울러 슬픔이 등 뒤로 내려침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버리지 않았다.


작년 봄 내가 한 달포를 두고 몹시 앓았을 때 의사를 찾아가니 그 말이, 돌아오는 가을을 넘기기가 어렵다 하였다. 말하자면 요양을 잘 한대도 위험하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술을 맘껏 먹었다. 연일 주야로 원고와 다투었다. 이러고도 그 가을을 무사히 넘기고 그 다음 가을, 즉 올 가을을 앞에 두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도 얼마만치 농담임을 알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나의 몸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이라야 다만 나는 온순히 그 앞에 머리를 숙일 것이다.


요즘에 나는 헤매던 그 길을 바로 들었다. 다시 말하면 전일(前日) 잃은 줄로 알고 헤매고 있던 나는 요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를 위해 따로이 한 길이 옆에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 길이 얼마나 멀는지 나는 그걸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그 길을 완전히 걷는 날, 그날까지는 나의 몸과 생명이 결코 꺾임이 없을 것을 굳게굳게 믿는 바이다.


[한영번역 by 희수공원]


며칠 전 거리에서 우연히 한 청년을 만났다.

A few days ago, I accidentally met a young man on the street.


그는 나를 반겨 다방으로 끌어다 놓고,

He welcomed me and invited me to a tea house,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던 끝에 돌연히 충고하여 가로되,

after conversing for a while, he suddenly offered me advice,


“병환이 그러시니만치 돌아가시기 전에 얼른 걸작을 쓰셔야지요?" 하고 껄껄 웃는 것이었다.

"Why don't you write a masterpiece before your illness takes its toll?" After asking, he burst into laughter.


진정에서 우러나온 충고가 아니면 모욕을 느끼는 게 나의 버릇이었다.

I have a habit of feeling insulted by insincere and reckless advice.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옆에 놓인 얼음냉수를 들어 쭈욱 마시었다.

I pretended not to listen and quickly gulped down some ice-cold water beside me.


왜냐하면, 그는 귀여운 정도를 넘을 만치 그렇게 자만스러운 인물이다.

He took more pride in himself than he did in his cuteness.


남을 충고함으로써 뒤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그리고 거기에 어떤 만족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청춘이었던 까닭이다.

He was a young man who overpraised himself by advising others and found satisfaction in his way of life.


얼마 지난 뒤에야 나는 입을 열어 물론 나의 병이 홀연히 나을 것은 아니나,

Eventually, I told him that my illness wouldn't be cured suddenly,


그러나 어쩌면 성한 그대보다 좀 더 오래 살는지 모른다,

but I might live longer than even a healthy individual like you,


그리고 성한 그대보다 좀 더 오래 살 수 있는 이것이 결국 나의 병일는지 모른다 하고 그러니, 그대도,

my illness would be outliving even you, the healthy individual, and you then said,


“아예 부주의 마시고 성실히 사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Please, live more sincerely and avoid being careless."


그러고 보니 유정이! 너도 어지간히 사람은 버렸구나,

Then, hey, YOO-JUNG! You seemed too weakened,


이렇게 기운 없이 고개를 숙였을 때 무거운 고독과 아울러 슬픔이 등 뒤로 내려침을 알았다.

I realized that admitting this in poor spirits burdened me with grief and heavy solitude.

 

그러나 나는 아직 버리지 않았다.

Nevertheless, I didn't give up on myself.


작년 봄 내가 한 달포를 두고 몹시 앓았을 때 의사를 찾아가니 그 말이, 돌아오는 가을을 넘기기가 어렵다 하였다.

Last spring, after suffering for a month and a half, the doctor said I might not live past autumn.


말하자면 요양을 잘 한대도 위험하다는 눈치였다.

My health was in danger, even though I was receiving excellent treatment.


그러나 나는 술을 맘껏 먹었다.

However, I drank excessively.


연일 주야로 원고와 다투었다.

I kept fighting with my writing day and night.


이러고도 그 가을을 무사히 넘기고 그 다음 가을, 즉 올 가을을 앞에 두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Nevertheless, I survived through autumn and now await the next one.


과학도 얼마만치 농담임을 알았다.

 I came across some humorous insights from science.


가만히 생각하면 나의 몸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길’이다.

Considering what controls my body, it's the 'journey.'


그리고 그 ‘길’이라야 다만 나는 온순히 그 앞에 머리를 숙일 것이다.

The 'journey' could only make me surrender to it.


요즘에 나는 헤매던 그 길을 바로 들었다.

Recently, I've found myself on the right path of my journey after wandering for a while.


다시 말하면 전일(前日) 잃은 줄로 알고 헤매고 있던 나는 요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를 위해 따로이 한 길이 옆에 놓여 있음을 알았다.

Again, I've realized that the journey meant for me is by my side, even when I'm confused about having lost in the past.


그 길이 얼마나 멀는지 나는 그걸 모른다.

I don't know how far it might be.


다만 한 가지 내가 그 길을 완전히 걷는 날, 그날까지는 나의 몸과 생명이 결코 꺾임이 없을 것을 굳게굳게 믿는 바이다.

But one thing I firmly believe is that my body and life won't surrender until I reach the end of the journey.



#라라크루 #라라라라이팅 내 길이 끝나는 날까지 꺾임없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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