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순례
이백 스물네 번째 글: 글쓰기 장소에 변화를......
종종 지하철 순례를 합니다. 말이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별 것은 없습니다. 제가 사는 대구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종점을 오고 가며 글을 쓰는 걸 이르는 말입니다.
저희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월촌역에서 안심역까지 25개소의 역을 가는 데 45분 정도가 걸립니다. 종점에 도착하면 인근을 잠시 산책합니다. 캔커피도 하나 마시고, 가끔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노래도 불러봅니다. 다음에 쓸 글의 글감을 구상하는가 하면 내리기 전까지 완결하지 못한 글은 이때 반드시 끝을 맺습니다. 그러고는 반대편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다시 종점인 설화명곡역까지 갑니다. 31개소의 역을 지나는 데 약 55분 정도 소요됩니다.
이 지하철 순례의 가장 큰 장점은 큰돈 들이지 않고 최소한 1시간 반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게다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끔 지하철 빌런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열차 칸을 넘어가면 되니까 큰 문제는 없습니다.
보통은 글감을 가진 상태에서 순례길에 오릅니다. 딱 타는 순간부터, 아니 열차가 들어오기 전부터 제 손가락은 바빠집니다. 그렇게 쓰면 적게는 두 편에서, 글이 잘 풀리는 날은 세 편 이상 쓸 때도 있습니다. 굳이 만만치 않은 돈을 들여가며 커피 전문 매장을 가지 않아도 되니 꽤 괜찮은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간혹 글감이 없는 상태에서 지하철에 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지하철 안의 풍경에 대해 쓰면 됩니다. 특히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에 대해서 쓰기도 하는데, 꽤나 흥미롭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외양이나 행동을 묘사하며 그 사람의 나이를 짐작하고, 성격은 물론 직업까지 유추해 봅니다. 이건 뭐, 사실상 소설 쓰기에 가깝습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을 제가 만들어 내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쳐다보거나 시선이 잘못 마주치면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제게 참, 할 일도 어지간히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일이란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하철 순례의 목적은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엄연히 '글쓰기'에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순례길을 마칠 때 완결된 글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건 제가 말하는 지하철 순례를 한 게 아닙니다. 그럴 바에야 좌석에 기대어 부족한 잠이나 보충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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