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독한 길치입니다. 지금은 운전을 하지 않지만, 운전하던 12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늘 저에게 길눈이 어둡다고 했습니다. 길치인 저는 그래서 이전에 갔던 여행지를 가면 늘 갔던 곳에 다시 가곤 합니다.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고 해도 특정 장소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게 반갑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들를 곳은 총 3군데입니다. 해운대, 광안리,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 센텀점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세 곳 모두가 지하철 2호선에 위치해 있고, 심지어 같은 방향에 있기에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부산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탔습니다. 노포 방면으로 가면 되는데, 여섯 개의 역만 지나면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서면역에 내려야 합니다. 생각보다 지하철 안이 조용합니다. 이곳의 시민들이 제가 사는 대구보다 시민의식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섯 개의 역을 지나는 동안 그 흔한 휴대폰 벨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옆에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게다가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서면역에 내립니다. 여기에선 장산 방면으로 가야 합니다. 10번째 역에 광안역, 13번째 역에 센텀시티역, 그리고 16번째 역에 해운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첫 행선지는 광안리입니다. 다음은 해운대, 그리고 마지막은 알라딘 중고서점 센텀점이 되겠습니다.
지금의 바다는 대략 15~20억 년 전에 형성되었단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 나이 이제 50대 초반이니, 바다의 나이는 줄 잡아 제 나이의 3천만에서 4천만 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나이입니다. 그건 쉽게 생각해서 4백 년 이상 산다고 알려진 4백 살 짜리 그린란드 상어와 1초 전에 태어난 아이, 이 둘이 지구에서 누린 시간을 비교한 것과 엇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일까오? 우린 늘 바다를 보면 속이 탁 트인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하긴 그만큼 오래 산 어른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갓난아이 같은 우리 인간을 품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자, 이제 드디어 광안역에 내립니다. 아직은 바다 냄새가 안 납니다만, 출구를 나서면 곧 느낌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