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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an 18. 2024

다작과 소작

어떤 것이 과연 더 좋을까요?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말 자체에도 그만한 힘이 실리는 법입니다. 당연히 초고를 쓸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 반드시 글을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이 퇴고라는 작업이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이라도 퇴고를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퇴고를 한다는 뜻은 곧 더 많은 글을 쓸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단적으로 퇴고를 하지 않으면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화두가 생겨납니다. 다작(多作)과 소작(少作),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명색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묻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소작의 개념 속엔 그만큼 퇴고 과정을 거친다는 게 전제되어 있어야 비교가 가능합니다. 단순히 적은 편 수의 글만 쓴다 뿐이지, 정작 한 편 한 편에 대해 퇴고를 하지 않는 소작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잠시 화제를 돌려서 다독과 소독을 비교해 보면 그 효과는 금세 드러나게 됩니다. 전 대략 14년 전에 '1000권 읽기'를 목표로 삼아 미친 듯이 책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8년 2개월 만에 기어이 목표로 한 1000권을 읽기는 했는데, 그때 전 다독이라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에서 쇼펜하우어도 다독은 글쓰기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글의 편 수에만 신경 쓴 나머지 한 편 한 편을 오랜 시간 퇴고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글쓰기에 독이 되지 않을까요? 짧은 시간 내에 800여 편에 가까운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이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도 다작하는 저의 습관 때문이 아닐까요?


처음 브런치스토리에 왔던 날, 제 방을 만들었을 때 자기소개를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당당하게 '작가 지망생'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의 꿈 중의 하나가 작가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현재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건 알겠는데, 과연 제가 무슨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지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저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표현해야 저를 온전히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세이, 즉 수필을 낮춰서 보려는 게 아닙니다.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정작 소설보다 신변잡기적인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는 저를 보면서 자꾸만 초심이 흔들리는 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작'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뭘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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