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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19. 2024

아랫니 세 놈

이백 마흔두 번째 글: 이별을 고할 때입니다.

오늘은 어쩌면 슬픈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나 지금껏 50여 년을 함께 해왔던 제 아랫니 세 녀석을 떠나보내야 하는 날입니다. 염증이 생겼거나 이가 썩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어느 날 양치를 하던 도중에 느낌이 이상해서 살펴봤더니 뿌리째 흔들리더군요. 나란히 붙은 네 개의 치아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이가 흔들리고 있어서, 그 사이에 낀 멀쩡한 세 번째 이까지 발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얼마이건 간에 병원에 간다는 건 확실히 유쾌한 상황이 아닌 건 틀림없습니다. 더군다나 치과에 가야 한다면 거의 공포감에 가까운 두려움을 자아내곤 합니다.


아무리 의사와 간호사라지만 타인 앞에서 입을 벌린 채 냄새를 풍겨야 하는 상황이 반가울 리 없습니다. 끊임없이 드나드는 기괴하게 생긴 도구들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영 별로입니다. 집게로 이를 쥐고 좌우로 흔들어댈 때 머리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은 머리털을 곤두서게 합니다. 부분마취 덕에 정작 발치되는 순간에 통증은 없다고 해도 입 안에 퍼지는 비릿한 피 맛은 불쾌감마저 들게 합니다.


발치하기 전에 미리 본을 떠 놓은 임시 치아를 착용하고 며칠 동안 지낼 때에도 제 이가 아닌 타인의 이를 몸에 지닌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막상 임플란트 치아가 나와 제 잇몸에 고정시키고 드릴로 박아 넣을 때의 그 기계음은 아직도 귀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윗니 임플란트 시술을 하던 당시에 고스란히 겪은 과정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옵니다. 오후 3시, 30분 남짓 남은 시간이 왜 이렇게 싫을까요? 어딘지 모르게 인조인간이 되어가는 기분마저 듭니다. 별 일 따위는 없다는 걸 알지만, 최대한 덜 아프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 봅니다. 그나저나 50여 년 동안 그 많은 음식들을 씹어대느라 고생한 녀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 보게도 됩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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