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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an 28. 2024

집이 절간입니다.

003.

오늘, 아니 지금 이 시각부터 2월 1일 7시 정도까지는 집에 저 혼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군대 가 있고, 하나 있는 딸과 아내는 저녁 8시 30분 비행기로 제주도로 날아갔으니까요. 그래서 그 북적대던 집안이 삽시간에 절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 남자가 나이가 들면 이사 갈 때 이삿짐 차에 반드시 먼저 올라타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운전석에 앉은 이삿짐 회사 직원 바로 옆의 중년 혹은 노년의 남자, 마지막 창가 쪽은 아내가 타야 한다고 하지요. 안 그러면 예전에 살던 집에 내버려 두고 간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으니까요.


며칠 전부터 아내와 딸이 난데없이 제주도 타령을 하고 나섰습니다. 아내는 그렇다고 쳐도 딸은 한 번 입을 열면 반드시 뭔가라도 해야 하는 성격이다 보니, 딸이 저렇게 제주도 타령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이번에 제주도 가족 여행을 하게 된다는 것쯤은 우리 식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 일단 비행기 티켓 예약, 숙소 예약, 렌터카 예약까지 마치고 나야 그다음 일정에 대한 논의가 가능한 것입니다. 원래 30일인 모레에 가기로 했는데, 딸아이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이틀이나 일정이 앞당겨지고, 게다가 이 야밤에 굳이 제주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뭐, 제가 반드시 이번에 따라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아니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삿짐 차에 올라타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끊기 직전에 딸이 한 마디 던지더군요.

"이번엔 우리 여자들끼리 갈 거야. 아빠는 집이나 지켜!"


원래 나이가 들면 잘 토라지는 법이지요. 내색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적지 않게 서운했습니다. 물론 이미 비행기 티켓까지 예매한 상태에서 제가 따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또 그제야 그건 아니라고, 아빠도 혹은 당신도 같이 가자고 한다고 해서 냉큼 따라나설 만큼 제가 속이 없는 사람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서운한 건 서운한 것이더군요. 캐리어와 몇 가지 짐을 차에 싣느라 주차장에 따라 내려가 있는데도 좀처럼 서운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시간을 두어 시간 남겨 놓고 급히 떠난 것이라 아내나 딸이나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긴 쉽지 않았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무탈하게 잘 다녀오길 비는 것 외에는 제가 할 일은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려 나흘이라는 자유 시간이 주어진 셈입니다. 그 나흘 동안 저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요? 일단 오늘 밤은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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