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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Feb 01. 2024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순직

004: 납득이 가는 세상에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아침에 대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TV에서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무런 잘못 없는 소방관 두 분이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하셨다는 보도였습니다. 늘 뒷북치기, 소를 반드시 잃어봐야 외양간을 고치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회. 하지만 이만큼 살아보니 이젠 확실히 알게 된 사실도 하나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나라는 소를 잃어도 절대 외양간을 고치지 않더라고 말입니다. 사실 다른 나라의 경우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자체로서 기능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부에서는 '두 영웅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고 유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쉽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죽고 나서 어떤 대책이나 지원이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물론 남은 유족들을 생각하면 모종의 대책이라도 있는 게 마땅하겠지만, 그런 것 역시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27세, 35세면 한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쩌면 아직 피지도 못한 꽃일 수도 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 가족이나 친척 중에 한 사람이라면, 하다 못해 우리가 잘 아는 분들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화재라는 게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없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매번 화마에 스러져 가는 분들이 생긴다는 게 저로선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다소 무지한 발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과학기술로 화염을 보다 더 오래 견뎌내는 방화복 제작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혹시 여기에도 예산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요?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건 총기로 무장한 적들과의 전쟁에 활과 창만으로 군인들을 꾸려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꽤 오래 전의 일인 걸로 압니다. 일본의 취객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안타깝게 사망했던 고 이수현 씨의 사고 말입니다. 그때도 제 기억엔 정작 우리나라보다도 일본이 훨씬 더 난리였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던 그 지하철 역에선 꽤 오랫동안 고 이수현 씨를 기리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이어졌고, 현재도 몇몇 분들이 여전히 그날만 되면 꽃을 가져다 두고 이수현 씨의 희생을 기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아야 된다는 움직임이나 고인의 뜻을 기리는 모습 등도 일본에게선 가히 생각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납득이 가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매번 공익적인 차원에서의 개인의 희생이 따르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순직이라는 사후 처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고인들의 의로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일련의 노력들이 따르는 것은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지당한 일이겠습니다. 그렇지만 제발 일회성에 그치는 이벤트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하루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이 땅에 계신 수많은 소방관 분들, 그리고 일선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경찰관 분들, 부디 더 이상의 희생이 없는 정의롭고 납득이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우린 언제쯤 납득이 가는 사회에 살아볼 수 있을까요?

삼가, 화재로 유명을 달리하신 문경의
27세 김*관 소방교, 35세 박*훈 소방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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