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된 풍경-<블루데이지, 코알라 머릿결이 되다>

블루데이지, 코알라 머릿결이 되다

by 자야

서울에서 사는 둘째가 내려오는 길에 코알라 화분 한 쌍을 가지고 와서 내민다.

"아무래도 난 식물킬러인가 봐. 다육이 화분이 너무 예뻐서 샀는데 시들시들하더니 어느 날 말라버렸어. 다른 사람들은 잘만 키운다는 다육이를 말라죽이다니 . 근데 이쁜 화분을 버리기는 넘 아까워서"

신랑이 키우다 죽으면 마음 아프니까 다음에는 절대 사지 말라고 했다면서 수건에 돌돌 말아서

싸 온 화분을 꺼내 놓는다.


" 어머나! 어쩜 넘 귀엽다야. 울 딸들 어렸을 때 사줬던 코알라 가방처럼 앙증맞네."

둘째는 버리기 아까운 귀욤귀욤 한 코알라를 나한테 가져다주면 어떻게든 살릴 거라 생각했을 거다.

주말에 딸이 남기고 간 사랑스러운 흔적을 차에 싣고 '앤 뜰'로 들어온다.


발아시키고 있는 씨앗들이 지난주까지는 실가닥 같더니 한 주 사이에 제법 소복해져 있다. 그중에 옮겨도 좋을 만한 모종을 두 개 고른다. 용기에 '블루데이지'라고 쓰여 있다. 오른쪽 화단 흰색 마가렛 옆에 심으면 좋겠다 싶지만 우선 화분에 키워 보고 무성해지면 그때 옮기기로 한다.


봄햇살이 좋은 오후, 모종을 심고 물을 흠뻑 준 다음 화분을 씻어주니 더 앙증맞다. 바람에 살랑대는 여린 싹이 초록초록하다. 블루데이지 두 화분 사이로 보이는 활짝 핀 복사꽃도 나 여기 있다는 듯 달려와서 분홍 배경이 되어준다. 인증삿을 찍어 딸에게 보낸다. 카톡, 카톡 답이 온다.

"귀엽닼 ㅋㅋ"

" 머리 난 것 같이 귀욥네"

딸아이가 좋아하니 기분이 좋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말 코알라 머릿결 같다. 잘 자라서 윤기 흐르는 코알라 머릿결이 되어야 할 텐데. 여우를 기다리는 어린 왕자의 금빛 머리처럼 코알라의 머리에 블루 꽃망울이 맺히기를 기다려 보자.



블루데이지, 코알라 머릿결이 되다

하주자


시들시들하더니 어느 날 말라버렸어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수건에 돌돌 말아서 내민

어릴 적 메고 다닌 가방 같은

코알라 한 쌍

햇살 좋은 날

실가닥 모종 옮기고

물을 흠뻑 줬더니

여린 싹이 초록초록하다

바람에 살랑, 눈부시다

화분 뒤로 복사꽃

나 여기 있다는 듯 달려와

분홍 배경이 된 인증샷을

딸에게 보낸다

카톡, 카톡 답이 온다

귀엽닼 ㅋㅋ

머리 난 것 같이 귀욥네

가만히 들여다보니

물방울 롯드를 말고 있는

햇살과 바람

어린왕자 머리결 같은

청빛 꽃망울을 피어 올려줄까

블루 펌을 한 코알라 한 쌍


《나비, 꿈속에 들다》 시와사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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