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는이가] 정끝별, 문학동네
매일 아홉시에서 여섯시 까지 미친 춤을 추다 멈추면 밤이 왔다.
시 속 화자처럼
'여름내 우는 발은 지린 눈물 냄새를 피웠고 겨우내 우는 발은 발갛게 얼음이 박혔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니까 그들의 입맛대로 춤을 췄던 시간들.
은퇴를 하고 나니 춤이 멈췄다.
대신 어깨와 발목이 고장났다. 통증의학과와 한의원을 번갈아 순례하던 어느날,
굼뜬 내 발걸음을 홈캠으로 보고
가슴이 철렁한 적이 있다.
'바닥의 총합이 눈물의 총량이었다' 는
화자처럼 걸음도 걸어온 길의 총량일 것이다.
살아온 날들 대개가 '착시였고 댓가'인 것이다.
"우시사 ( 우리는 시를 사랑해)"에서 배달된
나희덕 시인의 글이 너무 좋아 옮겨 본다.
이 시가 실려 있는 『은는이가』는 정끝별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인데요. ‘시인의 말’이 간결하면서도 사뭇 비장합니다.
다섯번째 패를 돌린다
이렇다 할 도박력도 없이
이렇다 한 판돈도 없이
발바닥에 젖꼭지가 돋거나
손바닥에 닭살이 돋거나
이렇다 할 판돈도 없이 도박의 능력도 없이 다시 패를 돌리는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두려움이나 무력감과 싸우며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사실 이런 마음 아닌가 싶습니다. 시인은 그런 속에서 “발바닥에 젖꼭지가 돋거나/ 손바닥에 닭살이 돋거나” 하는 기적을 기다립니다. 취약하지만 가장 예민한 감각을 지닌 발바닥과 손바닥은 시인이 세상을 느끼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중요한 무기라고 할 수 있지요.
「발」이라는 시에는 부르튼 발을 쐐기풀에 찔리면서도 끝없이 춤을 추어야 하는 화자의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감정이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없이 외쳐대지요. “춤을 춰, 노랠 불러, 네 긴 밤을 보여줘!” “헤이, 춤을 춰, 네 흰 발을 보여줘!” 그 비정한 요구와 타인의 고통을 즐기려는 관음증적 시선 앞에서 ‘나’는 누구와도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봄엔 너도 피었고 나도 피었으나 서로에게 열리지 않았”고, “나는 너의 춤과 노래가 되지 못했”지요. 발자국들은 잠시 가까워졌다가 이내 멀어지고 흩어질 뿐, “가을에도 우리는 쌓이지 않았”습니다. 맨발은 중력의 지배를 받으며 계속 춤을 추어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고, ‘나’는 말합니다. “여름내 우는 발은 지린 눈물 냄새를 피웠고 겨우내 우는 발은 빨갛게 얼음이 박혔다”고. “따로 울지 않으려 늘 우는 발을 탓할 수도 없다”고.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에는 금기를 어겨서 분홍신을 신은 채 끝없이 춤을 추어야 하는 주인공 카렌이 등장합니다. 더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게 된 카렌은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의 발을 잘라달라고 부탁하지요. 발이 잘린 뒤에도 분홍신은 스스로 움직이며 춤을 춥니다. 『분홍신』에서 이 끝없는 형벌이 분홍신에 대한 카렌의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되었다면, 정끝별의 「발」에서는 고통의 원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게 좀 다르긴 합니다.
그런데 7연을 보면, “중력에 맞서면서부터 눈물을 흘렸으리라”고 화자는 말합니다. 맨발로 계속 춤을 추어야 하는 운명을 거슬러 날갯짓을 하는 순간 화자는 “발아래가 인력의 나락이었고 애초에 두 발이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고통이라고 느끼는 것의 대부분이 이러한 “착시”나 “대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계속 추어야 하는 화자의 고통이 쉽게 끝나는 건 아닙니다. “바닥의 총합이 눈물의 총량이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안으로 삼키던 눈물을 흘리게 되었을 뿐이지요.
저는 이 춤추는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의 발을 잠시 멈추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탁 트인 벌판이나 해변에 데려다주고 싶습니다. 이 드넓은 ‘호곡장’에서 맘껏 통곡하고 웃어도 보라고요.
2025년 12월,
나희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