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을 거야 #4
드라마 <셜록>에 보면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존 왓슨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을 “셜록의 숙적”이라고 표현한다. 원작 소설을 잘 아는 팬들이라면 ‘숙적’이라는 단어에 바로 제임스 모리어티 교수를 떠올렸겠지만, 해당 에피소드의 후반에서 그가 셜록의 형이었음이 밝혀진다.
형제는 결국 가장 가까이에서 경쟁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첫째는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혼자 독차지하던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아기는 24시간 부모를 독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를 갖는다는 것은 “첫째가 외로울 것 같으니까 동생을 만들어줘야지”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첫째의 친구가 아닌 숙적이며, 경쟁자다.
강형욱 훈련사도 예능 프로그램 [ 아는 형님 ] 에 출연하여 “첫째 강아지가 외로울까봐 둘째 강아지를 들이는 것은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당연히 친구하고 하루 종일 노는 것은 좋지만, 그 친구가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작은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만한 말이다. 물론 성장한 뒤로 성향에 따라 친구보다 더 가까운 존재로 지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같은 가정을 겪었다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중요한 유대감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인생의 가장 취약한 시기에 자신을 공격했던 기억을 가진 존재는 충분히 공포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간혹 두 아이를 경쟁시켜 서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부모가 있는데, 이건 아주 잘못된 방식이다. 경쟁은 이미 하고 있다. 아이에게서 어떤 결핍을 알아차렸다면 그건 부모가 채워주어야 할 일이지, 두 ‘아이’가 서로 경쟁하면서 알아서 채워나가기를 바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