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집까지 2023.03.10
어머니상을 치르고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우리 부부는 아들 딸과 함께 동대문인근 광장시장을 찾았다.
재래시장에서 쇼핑도 하고 밀리오레 구경을 마치고 나는 교보문고에서 사고 싶던 책을 사기 위해 가족들은 동대문에서 전철에 태워 집으로 보내고 헤어져 혼자 걸어서 교보문고로 향했다. 그냥 같이 집으로 가자고 재촉하는 와이프를 아들이 말려주고 응원해 줘서 가능했다.
그러나 원했던 책이 아직 출간이 되지 않아 없어서 헛걸음을 했다. 한 시간 정도를 교보문고에서 놀다가 늦은 저녁에 집으로 향했다.
왠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가 싫었다.
매우 오랜만에 찾은 서울거리를 느린 속도로 보고 싶기도 하여 그냥 걸었다.
청계천 물길옆길을 상당 부분을 걷고 한남대교를 건너 고수부지 강변도로를 따라 명일동 삼익그린까지 늦은 저녁오후와 주로 밤길을 몇 시간을 걸었다.
가족과 동대문에 있는 청계천고수부지를 걸으며 이미 목격을 했던 홈리스여성은 내가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아 걸어올 때도 똑같은 벤치에 등을 돌려 누운 채로 두꺼운 옷을 여러 겹으로 입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그녀를 깨워 손에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어주었다.
이제는 어두워진 길을 한참을 걸어서 한남대교를 건너기 위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매장이 있는 한남동에 들어서니 무전기를 착용한 사복경관 두어 명이 길에 근무를 서고 있었다.
아 맞다, 청와대에서 나온 윤 대통령관저가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남대교를 걸어서 건너는 도중에 동쪽으로 보이는 올림픽대교 잠실대교 철교가 색색의 조명으로 매우 아름답다. 사진을 찍어도 보는 것만큼 멋있었다.
상당히 쌀쌀한 날씨에 다리를 건너거나 길을 걷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정말 없지는 않았다.
이 걸음은 한남대교를 오르기 꽤 이전부터 어두움 속을 지나고 있다.
두껍지 않은 옷으로 인해 3월 초 밤의 아직 추운 날씨가 피부에 와닿아 약간 고통스럽지만 견딜만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걸어야 했다. 몸에 열이 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한남대교 진입 전 마주친 젊은 여성에게 한남대교 가는 길을 물어보니 자기도 방금 한남대교를 건너왔다며 한남동으로 걸어오는 중이라고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밤길에 그 긴 다리를 걸어서 그것도 젊은 여성이 혼자서…
세상은 넓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실대교 고수부지에 도달하니 이미 시간이 여러 시간이 흘렀다. 배가 고팠다.
GS25 고수부지 편의점이 눈에 들어와 들어가니 나이 든 점원이 늦은 밤 가게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75세라고 절대 믿기지 않는 남자였는데 옛날 군대를 다녔던 육군 장교출신이라고 했다. 꽤 오래전에 아내와 사별하고 나이 40이 넘은 미혼의 아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웃음이 많고 삶을 즐기며 힘차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여기서 이 아저씨한테 배워서 처음 보는 기계에 라면도 끓여 먹고 막걸리도 한 병을 시켜서 먹었다. 너무 취하는 것 같아 반 병은 그 젊은 노인이 나중에 드시라고 가게에 남겨두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잠실고수부지에서부터는 100층이 넘는 롯데타워가 매우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명일동으로 가려면 광진교까지 와서 꺾어져야 한다는 걸 20년 만에 서울에 온 나는 잘못 천호대교에서 꺽어들어오니 명일동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곧 알아차렸다.
얼마를 걸어 올라가니 머지않아 그 옛날 포장마차가 보였다. 천호사거리쯤 인듯하다. 웬일인지 젊은 청춘 남녀들이 많아 시끌벅적한 내부에 그냥 들어가 보고 싶어진 나는 이미 밤늦은 시간이라는 걸 알았지만 들어가 자리에 앉고 말았다.
소주 한 병과 꼬막 한 접시를 시켜놓고 끝내 반 병도 못 마셨지만 실로 오랜만에 정겨운 포장마차집 내부의 분위기를 아마도 한 시간 정도 즐겼다.
와이프가 기다리는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었다.
저녁 6시경 교보문고에서 출발해서 명일동 삼익그린 apt까지 대략 7시간을 넘게 걸으며 놀며 , 도중에 처남은 평생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한강 고수부지 즉석 라면에 소주에 막걸리에 술도 마셨고 혼자 잘 놀았다.
P.S; 내가 상당기간 주말마다 하프마라톤을 달렸던 63 빌딩아래 고수부지 여의도부터 명일동 삼익그린까지 편도가 24km였는데 교보문고에서 명일동까지의 거리도 비슷하거나 조금 더 먼 거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