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시인

by 이종구Burnaby South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 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강점기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정지용-


윤동주(1917-1945 28세)와

정지용(1902-1950 48세)

2018. 9.4

참조: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아래는 윤동주 시인이 스물여덟 꽃 같은 나이에 그야말로 나라 없는 나라에서 돌아가신 뒤 일제로부터 해방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쓴 정지용 시인의 글입니다.


정지용 시인이 도지샤대학 영문과 20년 후배인 윤동주시인의 동생 윤일주와 해방 후에 인터뷰한 대화 내용도 포함되어 있고 70년 전 문어체로 쓰여있어 내가 마치 과거로 들아간 느낌이 듭니다.


우리가 독립된 자주국가에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P.S;

1. 두 시인이 유학을 했던 일본의 고도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교 교정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을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여겨 그 두 사람의 시비가 교정에 조금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2. 윤동주시인과 비슷한 연배인 김형석교수는 시인 윤동주가 정지용시인에 비해 학교성적은 떨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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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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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고 정성껏 몇 마디 써야만 할 의무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병(病) 아닌 신음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재조(才操)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누가 있어서 “너는 일편(一片)의 정성까지도 잃었느냐?” 질타한다면 소허(少許) 항론(抗論)이 없이 앉음을 고쳐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이 남았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의 유고(遺稿)에 분향(焚香)하노라.



겨우 30여 편 되는 유시(遺詩) 이외에 윤동주의 그의 시인됨에 관한 목증(目證)한 바 재료를 나는 갖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이 있겠다. 범이 죽어 가죽이 남았다면 그의 호피(虎皮)를 감정하여 ‘수남(壽男)’이라고 하랴? ‘복동(福童)’이라고 하랴? 범이란 범이 모조리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시인 윤동주를 몰랐기로소니 윤동주의 시가 바로 ‘시’고 보면 그만 아니냐?


호피는 마침내 호피에 지나지 못하고 말 것이나, 그의 ‘시’로써 그의 ‘시인’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그의 유시(遺詩) 「병원」의 一節




그의 다음 윤동주시인의 동생 윤일주 군과 나(정지용)의 문답, —


“형님이 살았으면 몇 살인고?”


“설흔한 살입니다.”


“죽기는 스물아홉에요—”


“간도에는 언제 가셨던고?”


“할아버지 때요.”


“지나시기는 어떠했던고?”


“할아버지가 개척하여 소지주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시노?”


“장사도 하시고 회사에도 다니시고 했지요.”


“아아, 간도에 시(詩)와 애수(哀愁)와 같은 것이 발효(醱酵)하기 비롯한다면 윤동주와 같은 세대에서부텀이었구나!” 나는 감상하였다.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러운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또 태초의 아침」의 一節




다시 윤 일주 군과 나와의 문답, –


“연전(연희전문;연세대 전신)을 마치고 동지사(도지샤대학교)에 가기는 몇 살이었던고?”


“스물여섯 적입니다.”


“무슨 연애 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 것 못 보았습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습니다.”


“인색하진 않았나?”


“누가 달라면 책이나 샤쓰나 거저 줍시다.”


“공부는?”


“책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하면 시간까지도 아끼지 않읍데다.”


“심술(心術)은?”


“순하디 순하였습니다.”


“몸은?”


“중학 때 축구선수였습니다.”


“주책(主策)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읍데다.”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들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 <간>의 一節




노자 오천 언(五天言)에,


‘허기심(虛基心) 실기복(實基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 )’이라는 구가 있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 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강점기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십자가>의 一節




일제 헌병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뼈가 강한 죄로 죽은 윤동주의 백골은 이제 고토(故土) 간도에 누워 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 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만일 윤동주가 이제 살아 있다고 하면 그의 시가 어떻게 진전하겠느냐는 문제.




그의 친우 김삼불 씨의 추도사와 같이 틀림없이, 아무렴! 또다시 다른 길로 분연 매진할 것이다.




1947년 12월 28일


정 지 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미니북)(초판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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