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삶. 2021.01.25

by 이종구Burnaby South

외로운 삶. 2021.01.25

참조:철학자 데카르트

한 시간 반동안 들여다보기 Decarte in 90 minutes

저자:Paul Strathern (런던출생,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출신의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1940년생 작가이자 학자이며 과학 철학 역사 문학에 대한 책들을 출판했다.


1.‘Phillosophers in 90 minutus’

2.’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 이야기’는 그의 책중 크게 성공한 시리즈책들이다.

해군에 2년간 복무했고 그리스의 섬에 가서 살기도 했고 1966년 인도와 히말라야를 방문했다. 이 방문을 기억 삼아 쓴 소설로 1972년 서머셋 모옴상을 받았다.


영국 런던의 킹스턴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강의했으며 작가이자 언론인인 외동딸 우나 Oona는 미래학자인 독일인과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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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프랑스의 철학자 1596년생인 르네 데카르트의 삶과 생애에 대해 공부를 했다.

비교적 90분간 낭독하는 글이라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서양의 마지막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도래한 기독교의 탄생에 따른 종교학 theology과 교회의 압박에 눌려 철학은 2000년 동안 새로운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내놓은 Original philosopher라 할 수 있는 데카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매우 긴 잠을 자게 된다.


그 사이에 사상가 thinker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은 자기의 새로운 학설을 만들어낸 철학자는 없었고 모두가 이전 철학자들의 생각을 조금씩 변형하거나 베끼거나 덧붙인 것들이었다.


르네 데카르트는 부유한 집안에서 고위 재판관인 아버지가 낳은 형제 중의 4번째로 프랑스의 투르에서 태어나지만 그의 생모는 출산 후유증으로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곧이어 재혼을 하자 할머니의 집에서 유모에 의해 키워진다. 그는 평생 가정부 하인을 고용하고 살았다.


내성적이었던 데카르트는 친구 없이 혼자 지내는데 곧 적응을 하게 되고 평생을 그렇게 산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크게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적도 없지만 공식적으로 크게 실패한 적도 없다.


인생의 후반부에서는 부모의 유산으로 주식 bond을 사서 그 이자로 평생을 네덜란드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랑하듯 여행을 다녔으며 어느 한 곳에 특별히 정착을 한 곳이 거의 없이 30번 이상을 이사하며 살았다.

오직 그의 아버지만이 데카르트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 간신히 알 수 있었다.

가족과 싸운 적은 없지만 가족과 형제들과 연락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그는 평생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고 일어나고 싶을 때 해가 중천에 뜰 정오쯤이 되어야 일어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데카르트의 습관은 평생을 이어진다.


아버지가 보내준 얼마 전에 새로 지어진 제수이트 jesuit(예수회) 라플라스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네덜란드에 가서 무보수로 그곳의 왕(군주)을 위해 무보수로 장교로 근무하지만 곧 무료함에 실증을 느낀다.


그는 종교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의 가르침은 허망하다고 느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서에 대해 즉 교회에 대해 “ 세상에 대한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을 제공했지만 진정한 답은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한다”

“They have all the answers but answered nothing”

는 걸 깨닫고 명상과 개인적인 사고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Rationalist합리주의자였고 신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데카르트는 “경험해 본 것만을 인간은 알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록크 흄드 경험론자 empiricist들의 생각과 반대로,


우리의 감각 즉 보고 듣고 하는 오감 five sense에 상관없는, 사유 reasoning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intuition직감과 deduction추정을 사용해서 신 God의 존재와 창조 creation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동시대를 살고 교류했던 수학자이자 철학자 종교가인 파스칼 Pascal, 호이겐스, 철학자 데이비드 흄등과 생각을 교환하며 살았다.

당대의 물리학자 이삭 비크만과 평생 친구로 도움을 받았다.


무신론자 athiest로 낙인을 받아 그의 저서 ‘명상록 meditation’등 모든 저서는 데카르트 사후에도 교회에 의해 금서로 규정되어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말했다가 교회에 의해 호되게 당하는 것을 목격한 데카르트는 교회와의 충돌을 피하려 출판을 앞둔 자기의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treatise‘의 출판을 포기한다.


<<그는 이삭 비크만에게 부탁하여 이탈리아에서 갈릴레오의 책을 구해 갈릴레이가 뭐라고 했길래 왜 교회에서 갈릴레오에게 자기의 견해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는지 읽어보는데 갈릴레오의 생각이 데카르트 자신이 출판하려던 책과 내용이 같은 것이 많았고 너무 비슷하다는 데에 놀라게 된다>>


주로 추운 네덜란드에서 은둔생활을 했고 유럽의 여러 곳을 긴 기간을 여행을 하며 자발적인 고독 속에 살았다.


지금도 네덜란드는 자유무역등 열린 생각을 가진 후손들이 살지만 네덜란드는 당시에도 종교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이탈리아 프랑스등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즉 종교적으로 매우 엄격했던 따라서 교회에 반대하는 자들을 화형에 처하거나 처참한 감옥형에 처하던 나라와 달리 융통성이 큰 나라였고 인쇄술이 발달하여 사상가들이 자기의 생각을 담은 책을 펴내기 좋은 나라였다.


따라서 데카르트 스피노자 홉스 등 많은 사상가들이 일종의 난민생활을 하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일 년 내내 추운 날씨 빼고는… 추위를 많이 타는 데카르트는 유리창이 많은 그의 방에서 석탄난로를 끼고 운둔하듯 몇 년을 살게 된다.


스웨덴의 젊은 여왕의 초청으로 스톡홀름의 궁전에서 20대 젊은 여왕에게 일주일에 3번 철학강의를 했다.

강의는 새벽 5시에 시작을 했으므로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일에 추운 날씨에 감기가 걸려 곧이어 폐렴으로 불과 몇 주 만에 5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16세기 당시 평균수명이 43세이므로 지금 평균수명이 약 83세인 캐나다나 한국으로 치면 93세에 생을 마감한 셈이다>>


<<데카르트는 평생 결혼한 적은 없었지만, 하인과의 사이에 딸 ‘폰신’을 가지게 된다. 데카르트는 사랑스러운 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다. ‘폰신’이 5살 때 병으로 갑자기 죽게 되자 데카르트는 슬픔과 절망에 커다란 고통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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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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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공부하면서 (다시 한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음과 같다.

1. 위대한 사상가는 일반적으로 고독(결혼조차 하지 않는 외로운 삶)으로부터 탄생한다.

주변의 자동차소리와 시장 난전판의 거래꾼들의 고함소리로 시끄러운 한가운데서는 새로운 생각이란 것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2. 재정적인(돈) 여건 등 일상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세상에 영합하는 즉, 세상에 의존해서 즉 노동을 해서 생활비를 조달하는(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은 새로운 오리지널 한 생각을 해내기가 힘들다.


사고구조가 재물의 욕심등 현실의 바삐 움직이는 톱니바퀴에 물려 찌그러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명성이나 금전적인 욕심과 그에 따른 주변사람들과의 비교경쟁으로 그것이 삶과 사고의 목적이 되고 생각은 동물적이 되고 단순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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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 이후 학문은 서양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이 그랬고 인문학도 그렇게 되었다.

두 가지 모두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가톨릭 christianity에 기둥을 세우고 떠받치려 쌓아 올린 예를 들면 토마스 아퀴나스등과 같은 천재들에 의해 세기에 걸쳐 확립되어 온 거탑인 신학 theology이 그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신학이 과학과 인문학의 사실상의 생산자인 산모 또는 나무의 씨앗이 자랄 수 있게 토양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과거의 모든 사상가들은 사실상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부분 동시에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사제 priest 종교학자 theologist였던 사람들이었다. 파스칼 볼테르 등이 그들이다. 여러분이 아는 아무나 이름을 대더라도 거의 예외가 없을 것이다.


그의 성향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우냐에 따라 그는 사제 priest , 종교 가라 불렸고 , 수학자라 불렸었고 , 물리학자라고 불렸고 또는 철학자라고 불렸을 뿐이다.


2. 쇼펜하우어가 극찬했고 그리고 톨스토이가 심취했던 3500년 전고대 인도의 종교서 베다 Vedas의 철학도 그렇고 지금의 서양사람들이 (그나마 일부지만 )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동양의 불교철학도 universal이라기보다는 이제 변방으로 밀려나 그야말로 로컬 local이 되고 말았다.


즉, 4대 문명중의 하나인 유럽의 그리스로마 문명이 동양의 인도 그리고 황하문명을 압도하는 세상이 된 걸 부인할 수 없다.

황하문명과 인도문명과 Vedas를 가르치는 대학은 오늘날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거의 없다.

1000년 2000년 뒤에는 동양문명 동양철학은 먼지에 묻혀 잊힐지도 모를 것 같다. 사람들이 더 이상 열어보지 않는 책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이고 책이 좀 들어 망가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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