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도 반가운 사람

by 징졔

결혼한 지 3~4년 정도 되었을 때라고 기억한다. 남편 귀가 시간에 맞추어 저녁 준비를 해놓고 올 때가 되었는데 싶어서 아파트 복도로 나가보았다.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복도에서 바로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때마침 남편이 주차를 하고 있었다. 둘째 시숙께서 서울에 왔다가 주차장에 남겨 두고 간 낡은 소형차였는데, 오래오래 우리의 발이 되어 주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은 달리다시피 종종 빠른 걸음으로 경비실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 왜 저렇게 급하지? 갑자기 소변이?’하는 생각에, 민망해할까 봐 먼저 집으로 들어가 못 본 척 시치미 떼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로 좀 풋풋했던 것 같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당연히 급하게 화장실부터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느긋하게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어~? 화장실 가고 싶지 않아?’하고 물으니, ‘아니~ 전혀. 왜?’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실토하며, ‘바쁜 일도 없는데 왜 그렇게 종종 뛰다시피 들어와?’ 하니, ‘내가? 아닌데?’라며 남편은 오히려 의아해했다. 남편은 자기가 그렇게 종종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난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의 그런 모습은 나에게 종종 목격되었다. 오랜 탐구 끝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당신이 빨리 보고 싶어서? 아님, 집에 빨리 오고 싶어서?’라고 얼버무렸다.


40여 년 가까운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내가 자기 가시권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냥 종종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달려온다. 남편은 나를 볼 때 생기는 그 감정을 ‘한결같은 반가움’이라고 표현했다. 집을 나간 지 30분 만에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도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반갑고, 단잠을 깨워도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남편은 예의 그 한결같은 반가운 표정이다.


남편의 그런 표정을 보는 것이 즐거운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새벽이면 일부러 남편을 쿡 찔러 깨워보기도 한다. 남편은 예외 없이 그 반갑다는 표정으로 내 이마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왜 아직 못 자고 그래?’하거나, 손을 잡아주기도, 코를 잡아 비트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리고 바로 돌아누워 잠에 빠져버리지만. 내 남편 00 씨는 정말 잠을 잘 자는 남자이다. 부러워서 때론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나를 보면 왜 언제나 반갑다는 느낌이 들어?’라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한참 생각하더니, ‘내게 없는 뭔가가 채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달까?’라고 답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나는 어떤 느낌인가? 내 감정을 오래오래 해부해 보았다. 내 느낌은 ‘안도’이다. 옆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가 옆에 있다는 안도감, 내 세상이 안전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언젠가 남편과 내가 두루 아는 학계의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우리 둘을 앉혀 놓고 ‘△△씨(나를 가리킴)는 늘 봐도 여장부 같은데, 그런 △△씨를 꽉 잡고 사는 것 보니 (내 남편을 한 번 흘끗 쳐다보면서) 00 씨도 참 대단해’라고 했다. 도대체 이 무슨 말인가?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밖에서 보면 우리 부부의 조합이 좀 신기한 모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느낌에 나는 남자들이 좀 불편해하는 여자다. 우리 세대의 남자들은 대체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에두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직설적인 화법의 여자를 불편해한다. 싫은 것을 굳이 얼굴에 감추려 하지 않고, 부연 설명 하는 것도 싫어할 뿐 아니라, 미사여구도 싫어하고 교언영색을 혐오하는 나는, 어떤 남자 후배로부터 ‘형(성별 가리지 않고 선배를 모두 형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은 전투적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어떤 남자 선배는 나에게 ‘△△씨, 사회생활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란 충고를 하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댁이나 그렇게 살지 마슈’했지만. (사실 난 의사 표현만 똑 부러질 뿐 감정 표현은 전혀 솔직하지 않고 어눌한 모순적인 캐릭터다.)


내가 여장부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내 남편 00 씨는 남자들의 조직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들하고 호흡 맞춰 같이 일하는 것을 편해하고, 가부장적 위계질서 같은 것을 혐오하는 편이다. 또 남자들만의 유흥문화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우리 세대의 일반적인 남자들 범주 밖의 남자인 셈이다. 직장 생활할 때 가끔 남편은 밤 9시 정도의 애매한 시간에 전화를 해서 저녁을 안 먹고 집에 들어가는 중이라고 알려올 때가 있었다. 남편이 생각보다 일찍 들어온다니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혹시 밖에서 맘 불편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남편의 밥상을 차리는 것은 너무 간단하다. 쌀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냉동고에 있는 비상 식재료인 생선 두 토막 정도 꺼내 굽고, 김과 김치, 달걀 프라이, 그리고 젓갈 같은 밑반찬 하나 정도면 남편은 대만족이다. 맛있게 저녁밥을 먹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이 시간까지 저녁도 안 먹고 온 건데?’‘응~ 회의 끝나고 다들 저녁 먹으러 간다는데, 난 가기 싫어서…’


남편은 직장 일을 하는 내내 아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저녁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술과 고기가 있는 떠들썩한 자리가 싫고, 그 후에 이어질 노래방 같은 유흥 문화도 싫다고 했다. 우르르 몰려가는 밥자리 술자리가 싫어서 집에 먼저 들어가겠다는 내 남편 00 씨가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혹시 사람들이 당신 마누라 의부증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라고 농담처럼 던져보기도 했다. 남편은 낄낄 웃으며 ‘하긴 나한테 물어보긴 하더라. 집에 가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많냐고’, 그러면서 꼭 서비스로 한마디 더 붙인다. ‘나는 집에서 당신이랑 있는 게 제일 좋더라.’


가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 본다. 이성 간의 감정적인 끌림이라기보다는 흡사 육친에게서 느끼는 것과 같은 그런 친밀감과 편안함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남편과는 종교관이 같고, 정치적인 지향이 같고, 전공 분야도 같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내면의 외로움이라는 동질감이 있다. 둘 다 아무에게도 자기 속마음을 열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범생이였을 것이다. 공부도 그럭저럭 했고, 학교 규칙 잘 지키고, 교우 관계 원만하고, 책임감 강하고, 명랑하고 등등… 생활기록부에 있는 선생님들의 평이다. 그러나 난 단 하루도 학교에 가고 싶은 날이 없었다. 소풍도 운동회도 수학여행도 싫었고, 다 같이 모여 뭘 하는 건 거의 다 싫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하는 조회나 입학식, 졸업식 같은 것은 더 싫었다. 친구 몇몇이 모여하는 스터디도 좋아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하나의 구호를 외치는 것 같은 행사는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어했다.


어릴 때는 집이 파묻힐 정도로 내린 눈에 고립되어 몇 날 며칠 집에 갇혀 지내면 얼마나 편안하고 아늑할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며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동경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등굣길에 눈물을 흘린 적도 가끔 있었다. 학교 가기가 싫어서.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가만히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눈을 뜨면 할머니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왜냐구? 할머니가 되면 혼자 자유롭게 온종일 집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할머니가 되면 온몸이 무거워서 혼자 자유롭게 집에 있어도 전혀 편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이런 속마음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친구에게도. 사회의 시선에 날 끼워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절대 들키면 안 되는 나의 약점으로, 몸에 생긴 흉한 상처를 꽁꽁 감추듯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가끔 나에게 쪽지 편지를 주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랬다. ‘너는 왜 절대 네가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이 없어?’라고.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야 그냥 내가 그렇게 힘든 사람이라 그랬어. 미안해’라고.


그런데 00 씨한테는 친해지면서부터 감추어둔 그런 내 힘들었던 이야기가 그냥 봇물 터지듯 나왔다. 정식으로 연애하기도 전부터 말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남편이 대학 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선배로부터 ‘너는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야’라는 비난을 들었다고 했을 때, 속으로 ‘아~ 우리는 동류구나. 내 편이구나’했다. 무리 속에서 느끼는 껄끄러움과 외로움, 심정적으로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인 그런…. 사회적 위장술은 내가 남편보다 좀 강한 것 같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우리는 사회적 생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커플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망가지지 않고 이 사회에서 소시민으로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하지 말라고 규정된 그 어떤 것도 범하지 않고, 우리의 능력을 초과하는 그 어떤 소망도 품지 않고, 부끄럽지만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정치적 부조리나 불합리를 적당하게 외면해서일 것이다. 떨쳐버리기 힘든 우리 안의 속물근성으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 부부가 언제나 서로를 한편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안정감은 타인이나 외부 상황에 대한 인식이나 감수성이 거의 비슷하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밖에서 아무리 피곤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가면 내 편이 있으니 그냥 집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고무줄이 어서 빨리 놓여나길 기다리듯, 자석에 쇳가루가 달라붙듯 그렇게 그냥 집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둘 다 사회에서 은퇴하고 나서는 아예 하루 종일 샴쌍둥이처럼 붙어 지낸다. 하루 한 시간 산책이 외부 출입의 전부인 생활이 며칠 계속되어도 지루하지 않은 게으름의 극치인 생활. ‘무위의 유익’이라는 고고한 경지를 실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산책을 나가지 않는 날은 소파 한쪽씩 차지하고 길게 눕거나, 침대에 데칼코마니 기법이라도 발휘한 듯 같은 자세로 누워 같은 유튜브를 들으며 같은 지점에서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가늘게 코를 골며 잠시 잠에 빠져 들기도 한다.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나면 새벽까지 한 편만 한 편만 더 하다가 다음 날 수면 부족으로 좀비처럼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긴 하지만 막상 여행에 대한 소구도 크지 않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서로 재촉하며 돌려 읽기도 하고, 심지어 일기도 5년째 같이 쓰고 있다.


아직 서로 방귀는 못 트고 있지만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더 자유로운 우리. 남편의 친한 친구 한 명이 ‘너네 둘이 그렇게 붙어 지내다가 나중에 한 명이 먼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구 그래?’라는 걱정을 했단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어쩌겠는가? 사람 사는 일을. 혼자 남아 둘을 추억하는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랄 뿐.


6년 전(2020년 7월 28일 화요일)에 쓴 일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베란다로 나가 걸어가는 00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00도 대여섯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두세 시간 후면 만날 것을 마치 이삼 년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작별 인사를 했다.’ 아마 늘 하던 대로 내 남편 00 씨는 현관에서 입맞춤을 하고 나갔을 것이고,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현관문을 닫자마자 나는 거실을 바삐 가로질러 베란다로 달려가 00 씨가 아파트 밖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신혼부부도 아니면서 이런 장난을… 다 늙어가지고 주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들 황혼이혼 피하려면 서로 좀 떨어져 있어야 한다던데, 이렇게 붙박이 가구처럼 서로 붙어살다 혹시 권태로워지지 않을까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여보, 우리 서로 지루하지 않게 노력하자. 언제나 ‘서로의 연예인’이 되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구, 또 어느 현자의 말처럼 우리 둘 사이에 ‘바람이 지나갈 공간’ 정도는 남겨 두는 게 좋겠지?